디지털이라는 차가운 도구, 0과 1의 픽셀 위로 열정을 쏟아내고 가장 뜨거운 본능을 건져 올리는 작가가 있다. The Imaginary Pocus 아티스트 아카이브, 그 열 번째 주인공은 디지털 아트와 미디어 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감정의 풍경화’를 그리는 아티스트 윤플YUNFUL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를 감정의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글과 음악, 미술을 두루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을 가장 완벽하게 채워준 것은 시각 예술이었다. 그는 이제 그 갈망을 디지털 언어로 치환하며 동시대 관객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Undo라는 안전장치: 백지의 공포를 넘어선 자유
윤플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속도와 직관이다. 그는 영감을 받고 감정이 차오르는 그 순간의 파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패스트 드로잉(Fast Drawing)과 과감한 라인 드로잉(Line Drawing)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에게 디지털 캔버스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해방구다. 어떤 예술가가 하얀 캔버스에 첫 드로잉을 하기가, 백지에 커서만 깜빡일 때 첫 문장을 쓰기가 겁이 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는 그는, 디지털의 지울 수 있다(Undo)는 속성을 창작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핵심 기제로 꼽는다.
삭제가 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수 있다는 점은 작가에게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소거한다. 그 자리에는 본능적인 터치와 역동적인 에너지만이 남는다. 몰입의 순간, 캔버스와 자신의 손만이 존재하는 듯한 완벽한 교감 속에서 터져 나오는 볼드한 터치는 이성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본능의 산물이다.
모든 것은 원자(Atom)다: 내면에서 생태로 확장된 시선
초기 윤플의 시선이 내면의 감정에 머물렀다면, 최근 그의 시선은 자연과 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개인의 안위와 자연의 건강함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관심은 대한민국 환경사랑 공모전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디지털이라는 가장 인공적인 도구로 자연을 그리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양자물리학적 통찰을 내놓는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디지털 캔버스로 표현된 자연 또한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자연의 외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영감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혀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윤플의 세계를 지탱하는 세 점의 인생작(Masterpiece)
수많은 습작과 실험, 그리고 확고해진 철학 위에서 탄생한 윤플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세 가지 작품이 있다.
첫 번째 인생작은 대만 타이베이의 루미트리(Lumitree) 빌보드를 장식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그를 각인시킨 <Bee Pollination(꿀벌의 화수분)_2024_Media Art>이다. 꿀벌이 사라지며 위태로워진 생태계를 시각화한 이 작품은 환경에 대한 우려를 직설적인 경고 대신, 화수분이 가장 강렬하게 빛나는 절정의 순간으로 포착하여 추상적으로 승화시켰다. 건물 1~2층 높이의 거대한 빌보드 위에서 펼쳐진 이 미디어 아트는 사이즈가 본질을 압도하며, 작가가 추구하는 감정의 전달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낸 역작이다.
두 번째는 <Scattered in Darkness 1_ 2023_Digital Art>이다. 어둠 속에서 화려한 색채가 흩뿌려지는 이 작품은 윤플에게 추상화라는 형식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적합한지를 깨닫게 해준 이정표와도 같다. 작가가 느낀 내면의 감정이 디지털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폭발하고 정돈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은 <YUNFUL WAVE_2024_Digital Art>. 앞선 작품들과 달리 작가명을 딴 이유는 2024년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sns의 대표 그림으로 자리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마음껏 표현된 윤플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연대하는 예술가: 캔버스 밖으로 외친 목소리
2023년 첫 개인전 「Late Spring」은 그가 예술가로서 살아가겠다는 확신을 얻은 결정적 순간이었다. 당시 갤러리 디렉터는 그의 작품을 두고 디지털임에도 회화적인 깊이가 느껴진다고 평했을 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마치 작가의 마음속을 읽어낸 듯한 글을 남겨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강렬한 지지를 발판 삼아 그는 대만 타이베이 루미트리 빌보드 전시, Web3 크리에이터 페스티벌 수상, 그리고 2024년 EntaXArtNGallery와 함께한 코엑스 어반브레이크(URBANBREAK) 참여까지 거침없이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그는 화이트 큐브 안에만 머무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인스타그램 챌린지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려 등 예민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동료 작가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 그림을 통해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관객들에게 감정의 해소와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윤플의 비전은, 예술이 개인의 힐링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연대하는 가장 우아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8할의 상상력, 그리고 숙성의 시간
기술의 발전은 그에게 위협이 아닌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그는 AI에게 AI 시대의 창작에 대해 물었다가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너는 너만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너만이 느끼는 감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건 AI가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답변이었다. 창작의 영역에서 상상의 힘은 8할 이상이라 믿는 그에게, 상상력이 결여된 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 그는 허리 재활 중이라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피지컬 작업은 잠시 미뤄둔 상태다. 대신 그는 내면의 아이디어들을 숙성시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업을 하면 바로 공개하지 않고 묵혀둔다는 그는, 이미 완성해 둔 수많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품들과 메모해 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꺼내 보일 예정이다. 언젠가는 Undo(되돌리기)가 불가능한 피지컬 작업이 주는 날 선 긴장감 속에서, 그림과 공예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도 분명하다.
윤플은 방황하는 예비 창작자들과 독자들에게 "타인을 모방하지 말고,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나만의 주관을 관철하라"고 조언한다. 예술이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매일의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을 갖는 것, 그것이 그가 제안하는 삶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으로 시작해, 이제는 생태와 사회를 아우르는 거대한 감정의 숲을 가꾸어가는 아티스트 윤플. 그는 인터뷰의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 창작을 하며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 보자"는 따뜻한 권유를 건네며, 독자들의 삶 또한 하나의 근사한 작품이 되기를 응원했다.
[아티스트 소개: 윤플(YUNFUL)]
‘감정의 풍경화’를 그리는 디지털·미디어 아티스트다. 글과 음악, 미술을 사랑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 갈망을 시각 예술로 풀어낸다. 디지털의 ‘Undo(되돌리기)’ 기능을 심리적 안전장치 삼아, 직관적인 ‘패스트 드로잉(Fast Drawing)’과 과감한 라인 드로잉으로 찰나의 본능과 감정을 캔버스에 포착한다. 2023년 첫 개인전 「Late Spring」을 시작으로 대만 타이베이 루미트리(Lumitree) 빌보드 전시, Web3 크리에이터 페스티벌 및 대한민국 환경사랑 공모전 수상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최근 2024 어반브레이크(URBANBREAK)에 참여했으며, 내면의 감정을 넘어 생태와 사회적 이슈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상상의 힘은 8할"이라는 믿음 아래, 창작을 통해 일상을 예술로 만들 것을 독려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치유의 힘을 실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yunful.27
[The Pocus Archive: 아티스트 아카이브 – OO을 사랑한 아티스트]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결국 인간의 마음과 상상의 힘에 있다. 본지 The Imaginary Pocus는 창간을 맞이하여 기술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 상상 세계를 지켜가는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연재 시리즈 [OO을 사랑한 아티스트]를 선보인다. The Pocus Archive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가치를 사랑하며 자신의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는 아티스트들을 엄선하여 기록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