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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서 칼럼] 선공후사의 재정의

유교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이순신의 공사일체 윤리

이순신이 실천한 선공후사는 오랫동안 “공을 위해 사를 버리는 윤리”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그의 삶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이 통념은 곧 흔들린다. 이순신의 선공후사는 사를 제거함으로써 공을 순수화하는 윤리가 아니라 사를 끌어안은 채 공의 부담을 더욱 무겁게 짊어지는 윤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공사일체의 윤리를 증언한다.

 

이 점은 정읍현감 시절의 ‘남솔’ 문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시대 지방관이 부임할 때 동반할 수 있는 수행원의 수와 자격은 법전에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다. 이는 지방 권력이 사적 관계를 통해 사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이순신은 아비를 잃은 조카들을 부임길에 동반했다는 이유로 안팎의 비판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는 조카를 버리지도, 공적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적 돌봄을 유지한 대가로 공적 비난과 불이익을 감수했다. 이것이 그가 실천한 공사일체의 윤리였다.

 

이 윤리는 전투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옥포대첩 직후 올린 장계에서 이순신은 승전을 보고하면서도, 육지에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사로잡혀 가는 현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해전을 치른 장수가 뭍의 백성을 걱정하며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이 장면은 단순한 애민의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전공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이순신 고유의 윤리적 감각의 발현이다.

 

이러한 감응과 윤리적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순신의 감응 윤리는 생애 전반에 걸쳐 형성된 관계의 기억과 책임의 습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 초계변씨가 있다. 초계변씨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양반가 여성의 삶이 대개 그러했듯, 그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만 기록되었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역으로 추적해 보면, 초계변씨는 이순신이라는 윤리적 주체를 형성한 가장 결정적인 관계의 주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이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병환 소식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추상적 덕목으로서의 ‘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유대이자, 그 관계를 통해 길러진 책임과 윤리의 문제다. 취약한 존재에 대한 감응, 관계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돌봄을 감당하는 윤리는 교범이나 병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몸으로 체득되는 윤리다.

 

유교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조선 사회의 공사 구조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드러난다. 조선 사회에서도 공적 영역은 남성, 사적 영역은 여성으로 구획되었지만, 이 구획은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수행한 돌봄과 양육, 관계 유지의 노동은 단순히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 주체를 형성하는 토대였다. 초계변씨가 전시 상황에서도 가문을 꾸리고 자식을 돌보며 후방을 지킨 일은 사적 역할 수행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이순신이라는 공적 윤리 주체를 가능하게 한 윤리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를 기록하지 않는다. 공사분리의 담론은 이러한 여성의 실천을 ‘사적인 것’으로 밀어내며 기록에서 삭제해 왔다. 이순신의 삶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는 공과 사를 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적 관계에서 형성된 돌봄의 윤리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이순신의 공사일체는 공적 책무를 사적 영역까지 침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적 돌봄의 감각을 공적 책임의 원리로 확장하는 윤리였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어머니의 부음을 듣는다. 그해 7월 그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8월 탈상한 뒤 9월 명량해전을 치른다. 이 네 달의 시간 속에서 애도는 완결되지 않는다. 그는 상실을 끝내 애도하지 못한 채 전쟁을 수행한다. 후대는 이를 ‘효보다 충을 택한 결단’으로 해석해 왔지만, 이 해석은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효의 감정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안은 채 공적 책임을 떠맡았다. 이것이 이순신 공사일체의 본령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을 위해 사를 버리라”는 요구는 여전히 강력하다. 직장에서는 헌신을, 가정에서는 희생을 요구하면서 이 이중의 짐은 여전히 젠더화되어 있다. 여성에게는 공적 성과와 사적 돌봄을 동시에 요구하지만 남성에게는 공적 헌신을 명분으로 사적 책임을 면제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순신의 삶이 증언하듯, 진정한 공적 윤리는 사적 돌봄의 감각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이순신의 선공후사는 결코 그의 개인적 덕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 초계변씨를 비롯해 그를 떠받친 수많은 관계들, 부하 장수와 민중들과의 합작품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그의 윤리는 진정한 공사일체일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선공후사의 본래적 의미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2.12 10:15 수정 2026.02.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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