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다 보면 종종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고목 나무일수록 여기저기에 가지가 부러지고 군데군데 깊은 홈이 파여 있는 등, 상처가 많다. 그러면 고목일수록 왜 상처가 많은 것일까? 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온갖 시련을 겪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옹이와 상처를 딛고 나무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면 가지마다 새들이 날아들어 둥지를 튼다. 딱따구리는 굵은 기둥을 쪼아 넓은 안식처를 만든다. 그러나 고목나무는 그런 상처를 안고도 찾아드는 온갖 잡새들을 모두 받아준다. 아니 받아줄 수밖에 없다. 고목나무는 날아드는 새들을 거부할 권한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고목나무가 가진 온갖 상처와 옹이들은 온갖 시련을 안겨준 비바람과 폭풍은 물론이고 날아든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받아들인 나무의 훈장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이런 고목나무의 일생과도 같다. 상처없는 고목이 없듯 상처없는 인생도 없다. 나무가 온갖 비바람과 폭풍을 이기고 살아가듯 인간도 온갖 비바람, 온갖 질병, 온갖 불운을 이기며 살아간다. 물론 온갖 행운이 따를 때도 있다. 그래서 화불단행(禍不單行: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이요, 행불단행(幸不單行: 행운도 홀로 오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생겼다.
또 북한산에는 인수봉, 도봉산에는 장군봉, 설악산에는 울산바위 등, 높은 산일수록 산꼭대기에는 집채같은 육중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육중한 바위가 아니었으면 산꼭대기의 세찬 비바람을 온전히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산꼭대기가 넓은 평지인 경우도 많다. 세찬 비바람에 수천만년 깎이고 깎였으니 평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깨끗한 물, 더러운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관용을 가진다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업적을 다룬 『관자(管子)』와 진나라 이사(李斯)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리더의 인재 수용 능력과 사회적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즉, 바다가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자체 정화하듯 대인(大人)은 다양한 사람들을 차별 없이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자(管子)』에는 포숙아(鮑叔牙)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을 환공(桓公)에게 추천하여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또 『사기(史記)』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는 진나라의 승상(丞相) 이사(李斯)가 “태산불양토양(太山不讓土壤: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로 진시황의 축객령(逐客令: 객경(客卿)을 쫓아 버림)을 철회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모두 포용력이 없으면 군주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아량”이라는 말이 있다. 패한 자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반대로 승리한 자는 패자를 품어주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아량을 접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당장 대선에서 승리하고 국회에서 과반을 확보한 여당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인사폭주, 퍼주기 폭주, 대북 화해폭주 등, 일방적 폭주가 심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야당도 서로를 탓하며 상호비방하기에 바쁜 듯하다.
아무리 말못해 죽은 사람 없다고 하지만 궤변과 악담과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 어디에도 승복과 포용과 아량은 없다. 땅에 넘어지면 땅 짚고 일어나듯 패자는 패배를 짚고 일어나야 하고 승자는 승리를 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정치판의 패자는 자중지란(自中之亂)에 휩싸여 있고 승자는 논공행상(論功行賞)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일 수도 있고,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정치판의 오늘 역시 구태의 반복일 수도 있고, 새로운 개혁의 시작일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은 새로운 집권자는 새로운 정책으로 시작하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당한만큼 갚아주마”하는 식의 소인배적 되갚기가 판을 치고 있는 듯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했던가? 안팎 어디에도 백로가 없으니 까마귀들만 여기저기서 까악까악하고 울어 댈 뿐이다.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