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스 제도의 영유권 문제
차고스 제도(Chagos Archipelago)는 한때 인도양의 벽지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국제 정치의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이 제도의 가치는 단순한 영토 이상의 것이며, 이는 국제 정세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차고스에 위치한 디에고 가르시아(Diego Garcia) 기지는 미-영 합동 군사 기지로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영국은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을 오랫동안 분쟁을 겪어온 모리셔스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반환은 역사적 부채를 일부 청산하는 것이며, 국제사회는 이를 환영했습니다. 다만, 반환과 동시에 이루어진 99년간의 미-영 기지 임대 계약은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열어준 반면, 미국과 영국의 장기적 군사 전략에도 중요한 변화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차고스 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식민지 청산 문제
차고스 제도의 영유권 문제는 오랜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65년, 영국은 모리셔스가 독립하기 직전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로부터 강제로 분리하고 영국령 인도양 지역(British Indian Ocean Territory, BIOT)으로 직할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 1,500~2,000명의 차고스 원주민(Chagossians)이 강제로 추방당했고, 그들은 모리셔스와 세이셸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미국이 디에고 가르시아에 군사 기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강제 분리와 원주민 추방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유엔 총회는 2017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차고스 제도 문제에 대한 권고적 의견을 요청했고, ICJ는 2019년 2월 영국의 차고스 제도 분리가 탈식민화 과정을 완료하지 못한 것이며 모리셔스의 영토 보전을 침해했다고 판결했습니다. ICJ는 영국이 가능한 한 신속히 차고스 제도의 행정을 모리셔스에 반환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후 유엔 총회는 2019년 5월 압도적 다수로 영국에 6개월 내 차고스 제도를 반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와 같은 국제적 압박 속에서 진행된 영국과 모리셔스 간의 협상은 단순히 영토 문제가 아닌 식민지 시대의 청산 문제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반환 과정을 통해 과거의 억압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재평가를 요구했으며, 이는 일종의 정의 구현으로도 평가됩니다.
2025년 5월 영국과 모리셔스 간 합의는 이러한 오랜 역사적 불의를 바로잡는 중요한 단계로 간주되었습니다.
트럼프의 일관성 없는 개입과 비난 그러나 이 합의는 곧 새로운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1월, 영국의 차고스 제도 반환 결정을 '엄청난 어리석은 행위(act of great stupidity)'라고 강력히 비난하며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전략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영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산을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영국-모리셔스 합의를 지지했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 내 보수 진영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는 1월 발언 이후 입장을 번복했다가, 2026년 2월 18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시 영국의 차고스 제도 이양을 '큰 실수(big mistake)'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영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의 통제권을 잃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특히 이란과의 핵 협상이 실패할 경우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가 군사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이란에 대한 잠재적 군사 행동 시 디에고 가르시아가 전략 폭격기와 해군 함정의 전진 기지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트럼프의 이러한 일관성 없는 발언은 미국 외교 정책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합의를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99년 장기 임대 계약을 통해 기지를 계속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발언은 영국과 모리셔스 간 신중하게 협상된 합의에 불필요한 긴장을 초래하고,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과의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독자적 협상 움직임 트럼프의 비난과는 별개로, 미국 국무부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2026년 2월 18일(현지 시각), 영국과의 협상과는 별도로 모리셔스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모리셔스 정부와 직접 3일간의 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회담의 목적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장기적이고 안전한 운영을 위한 안보 조치 이행'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트럼프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
이는 미국이 해당 기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모리셔스를 포함하는 다자 협상을 통해 기지의 장기 운영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영국-모리셔스 합의에서 99년 임대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실제 기지를 운영하는 주체로서 모리셔스 정부와 직접적인 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상은 기지의 운영이 인도양의 안정에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기지 접근권, 군사 작전의 자율성, 안보 협력 등 다양한 안보 조치를 포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국무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국이 인도양 및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평가됩니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중동, 동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의 전략 폭격기, 정찰기, 해군 함정이 주둔하고 있으며, 대테러 작전, 해상 순찰,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임무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차고스 원주민의 권리와 팰린다바 조약의 함의
차고스 제도 문제에는 또 다른 복잡한 층위가 존재합니다. 일부 차고스 원주민들은 모리셔스로의 이양에 반대하며, 차고스 제도에 영구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차고스 제도의 진정한 원주민이며, 1960년대 강제 추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모리셔스가 차고스 제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역사가 없으며, 단순히 영국 식민 행정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치권 또는 독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인권 회복과 자치권 부여라는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간주됩니다. 차고스 원주민들의 귀환권과 자결권은 국제 인권법의 관점에서 정당한 요구이지만, 동시에 모리셔스의 영토 주권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모리셔스 정부는 차고스 원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귀환 계획과 정착촌 건설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리셔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국제 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법적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핵무기 금지 조약인 펠린다바 조약(Pelindaba Treaty)에 서명한 국가입니다. 이 조약은 아프리카 대륙과 그 주변 도서 지역에서 핵무기의 연구, 개발, 제조, 보유, 실험, 배치를 금지합니다.
차고스 제도가 모리셔스 영토로 인정되면, 이론적으로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없게 됩니다. 미국은 기지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 냉전 시대에는 핵무기가 저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펠린다바 조약은 모리셔스의 주권과 비핵화 원칙을 존중하는 주요 사례이며, 이는 향후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운영 방식에 중요한 제약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99년 임대 계약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과 영국은 모리셔스의 조약 의무와 기지의 군사적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 차고스 제도의 반환 이후 미국과 영국의 군사 협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기지는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등)뿐만 아니라, 인도양의 해상 교통로 보호, 대중국 견제, 대테러 작전 등 다양한 전략적 목적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디에고 가르시아는 '두 번째 도련선(Second Island Chain)' 너머의 전진 거점으로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해군력 확장과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정책이 인도양으로 확대되면서, 미국은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존재를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괌, 하와이와 함께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전략적 고려사항
또한 이 기지는 북한 및 중국 등의 군사적 긴장 관계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전략 폭격기 B-52, B-1, B-2가 이곳에서 출격할 수 있으며,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 전단이 기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에고 가르시아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군사적 안정 및 국제적 평화를 위한 간접적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차고스 제도의 반환과 모리셔스와의 군사 협상은 신뢰와 동맹 관계 재구축의 측면에서 새로운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는 군사 기지 반환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국제관계에서 역사적 정의와 전략적 필요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영국과 모리셔스가 99년 임대 계약을 통해 영유권 반환과 기지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것은 창의적인 외교적 해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실제로 성공적으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트럼프의 비난과 미국 국무부의 독자 협상은 이 문제가 여전히 유동적임을 보여줍니다.
모리셔스 내에서도 미군 기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존재하며, 일부에서는 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환영하는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실질적 통제권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중소국가와 지역 안보의 미래
결국, 국제 사회는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미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미국, 영국, 모리셔스 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 청산, 국제법 준수, 군사 동맹의 미래, 원주민 권리, 핵 비확산 등 다양한 국제 규범과 가치가 교차하는 복합적 사안입니다.
중소국가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최적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모리셔스의 사례는 작은 나라라도 국제법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 강대국을 상대로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전략적 현실을 인정하고 실용적 타협(99년 임대)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들도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 재배치와 동맹 네트워크 재편은 한국의 안보 환경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역내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해군력을 포함한 자체 방위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를 둘러싼 복잡한 협상과 갈등은 21세기 국제 관계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냉전 시대의 단순한 진영 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정의, 국제법, 전략적 필요성, 인권, 환경 등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성 속에서 각국은 원칙과 실용성의 균형을 찾아야 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 수용 가능한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차고스 제도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국-모리셔스 합의의 이행, 미국-모리셔스 간 직접 협상의 결과, 차고스 원주민들의 귀환권 문제, 펠린다바 조약과 핵무기 배치 문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는 지역안보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국제법과 국제 규범의 미래에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차고스 제도 문제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우리의 국제 질서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도 깊은 관찰과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결국 국제사회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더 공정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박지영 기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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