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관계학, 십 대의 사랑은 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가
― 『봄날의 썸썸썸』이 성인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사랑은 언제나 봄처럼 설레는가. 혹은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오해와 폭력을 묵인해 왔는가. 십 대의 연애와 가족 갈등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봄날의 썸썸썸』은 겉으로는 중학생 유정의 성장담을 그리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관계 지형도를 촘촘히 펼쳐 놓는다.
탁경은 작가는 그동안 십 대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 온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교실과 가정, 그리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유정의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묻는다. 꽃처럼 화사할 줄 알았던 도시 생활은 ‘쩜. 쩜. 쩜.’이라는 허탈한 여백으로 시작한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타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외로움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청소년 연애 소설이 아니다. 황혼 이혼, 비혼, 조손 가정, 데이트 폭력이라는 묵직한 사회적 주제를 촘촘히 엮어 내며,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성인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요즘 아이들 이야기’라 치부하기보다,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의 단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유정과 할머니의 동거에서 시작한다.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감행한 유정은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 당황한다. 황혼 이혼을 선택한 할머니는 뒤늦게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세대도, 가치관도, 삶의 방식도 다르다. 충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 갈등은 단순한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 제도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여성의 삶, 돌봄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온 가족 구조, 그리고 자립을 꿈꾸는 청소년의 욕망이 교차한다. 성인 독자는 할머니의 선택에서 한국 여성사의 단면을 읽게 된다. 한평생 ‘며느리’와 ‘아내’로 살아온 이가 뒤늦게 ‘나’로 서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유정에게 주어진 ‘할머니 인터뷰’ 수행 평가는 이 소설의 중요한 장치이다. 인터뷰는 질문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부모의 부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유정은 질문을 준비하며 할머니의 과거를 더듬는다. 이는 독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부모 세대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의 선택과 포기를 이해하려 한 적이 있는가.
조손 관계는 명절에 잠시 만나는 관계로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손이 동거하는 현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이해와 대화의 결과라는 점을, 갈등을 통과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작품은 십 대의 연애를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유정의 친구 승희는 SNS로 만난 남학생과 교제하다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다. 끊임없는 메시지와 욕설, 집 근처를 배회하는 위협적 행동은 현실의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장면과 닮았다.
성인 독자에게 이 장면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예쁜 것’이라고만 말해 오지 않았는가.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구별하는 방법을 충분히 가르쳤는가. 십 대의 연애는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또 다른 축은 이모의 비혼 선택이다.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과거 세대에게 낯설다. 이모가 동거인과 함께 살면서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는 장면은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가족의 정의는 여전히 법과 제도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이 소설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질문한다. 결혼하지 않은 삶, 혈연이 아닌 동거인과의 관계, 황혼 이혼 이후의 삶을 차례로 보여 주며 독자에게 묻는다. 무엇이 가족인가. 우리는 누구를 가족으로 인정하는가.
승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위기 대응팀’은 인상적이다. 유정과 친구들, 할머니와 이모, 경비 할아버지와 건우까지. 노인, 여성,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폭력에 대응한다. 이 연대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실질적이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연대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성인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돌아보게 된다. 이웃의 문제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관계 회복의 출발점이라는 통찰이 담겨 있다.
유정은 인터뷰 과제를 수행하며 할머니를 새롭게 이해한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은 곧 성장의 과정이다. 이는 십 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고정된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성인에게 더 절실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봄날의 썸썸썸』은 십 대의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어른을 위한 관계학 교과서이다. 연애와 결혼, 가족과 진로, 성공과 자립이라는 주제를 통해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관계를 맺는가.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작품은 해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선택을 보여 준다. 황혼 이혼이라는 선택, 비혼이라는 선택, 연대를 통한 대응이라는 선택. 그 선택들이 모여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성인 독자라면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를 돌아보고, 자녀 세대의 고민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관계는 저절로 건강해지지 않는다. 질문하고, 듣고, 대화하고, 연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관계의 피로를 호소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혐오는 쉽게 번진다. 이런 시대에 『봄날의 썸썸썸』은 말한다. 건강한 관계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관계를 다시 배우고 싶다면, 자녀와 함께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세대 간 대화를 여는 첫 질문은 문학에서 시작될 수 있다. 더 많은 책 정보를 원한다면 교보문고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오늘, 당신의 부모와 자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길 바란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