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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의 우리말 찾기] 도토리에 얽힌 이야기

이봉수

도토리는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 열매다. 참나무 열매를 통칭하여 도토리라고 한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에 도토리가 열리는데 각각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들 중에서 도토리의 대장은 상수리다. 알이 굵고 둥글며 도토리묵 재료로 제일로 친다. 그래서 상수리묵을 임금님 수라상 맨 위에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렇게 다양한 도토리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림과학자들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 눈에는 그놈이 그놈처럼 보인다. 그래서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 정치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제 딴엔 아무리 잘났다고 생각해도 선거에 떨어지고 나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이런 도토리 백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 한 번 구르는 것이 낫다.

 

옛날 시골의 타작마당에서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할 때 상수리를 이용했다. 유리구슬은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라 큰 도토리인 상수리로 대신했다. 상수리를 전라도와 북한 지방에서는 '돌밤'이라 하고, 경상도에서는 '꿀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구슬치기가 아닌 '꿀밤치기'라는 말도 있었다. 맨땅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꿀밤치기를 하던 아이들은 지금 대부분 환갑을 넘겼을 것이다. 

 

'개밥에 도토리'라는 속담도 있다. 실제 개밥에다 도토리를 넣어주면 마지막에 빈 밥통 속에 도토리만 굴러다닌다. 개도 먹지 않고 따돌리는 음식이 딱딱하고 뺀질한 도토리다. 사람도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면 개밥에 도토리가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평소에 남을 배려하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지 않는 노랭이는 결국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만다.

 

도토리와 관련한 사자성어는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있다. 원숭이들에게 하루에 도토리를 일곱 개씩 주기로 했나 보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데모를 하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은 좋다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장자> 제물론과 <열자> 황제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연상케 한다. 위정자들의 포퓰리즘에 순응하여 원숭이가 되어가는 우매한 민중들이 많은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도토리묵은 구황 식품이다. 옛사람들은 흉년이 들면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묵을 만들어 배고픔을 이겼다. 떫은맛이 비교적 덜한 상수리묵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을 정도로 찰지고 맛이 좋다. 지금은 웰빙식품이 되었지만,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금봉이가 허리춤에 매달고 박달재를 넘었던 가난한 도시락이 도토리묵이었다. 

 

요즘은 진짜 토종 도토리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중국산 도토리 가루로 만들었거나 밀가루를 섞은 묵이 대부분이다. 절구통에 도토리를 찧어 묵을 만들던 옛 여인들은 대부분 하늘로 가고, 꿀밤치기 하는 애들도 이제는 볼 수 없다. 민초들과 애환을 함께했던 자연의 선물 도토리는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6.02.20 10:24 수정 2026.02.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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