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하시(尚巴志)가 오키나와 본도를 통일한 이후, 류큐 왕국(琉球王國)은 주변 도서 지역으로 지배력을 확대하였다. 1470년 쿠데타로 성립된 제2상씨 왕조(第二尚氏王統) 시기, 제3대 국왕 쇼신왕(尚真王)은 50년에 걸친 재위 동안 적극적인 영토 확장을 추진하였다.

당시 사키시마 제도는 미야코지마(宮古島)와 야에야마(八重山)를 중심으로 각 섬의 안지(按司)들이 세력을 다투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상태였다. 미야코지마에서는 나카소네 투이미야(仲宗根豊見親)가 세력을 통일하고 류큐 왕부(王府)에 복속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야에야마의 이시가키지마(石垣島)에서는 오야케 아카하치가 조공을 거부하고 독자 세력을 구축하였다. 1500년 쇼신왕은 3,000명의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왕부군은 미야코지마 세력과 연합해 이시가키지마로 진격했고, 격전 끝에 오야케 아카하치의 난을 진압하였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나카소네 투이미야와 그의 차남은 각각 미야코와 야에야마를 통치하는 카시라쇼쿠(頭職:류큐 왕국 시대, 야에야마 지방 각 시읍면의 장의 직책으로 현재의 촌장이나 시장에 해당한다)를 받았다. 이를 통해 류큐 왕국은 간접 지배 체제를 확립하였다.
야에야마 장악 이후, 류큐 왕부는 일본 최서단의 요나구니지마로 시선을 돌렸다. 당시 요나구니지마는 오니토라(鬼虎)가 지배하고 있었다.
1522년 쇼신왕은 군대를 보내 오니토라의 난(鬼虎の乱)을 진압하였다. 이로써 사키시마 제도 전역이 왕부의 지배 아래 편입되었다. 쇼신왕은 지방 유력자를 슈리(首里)로 이주시켜 무장 해제하고, 각지에 구라모토(蔵元)를 파견하는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적용하였다.
남방을 평정한 이후, 류큐 왕국은 북방 아마미 군도로 관심을 확대하였다. 제1상씨 왕조 시기에도 아마미 오시마 침공이 있었으나 완전한 복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2상씨 왕조 제6대 국왕 쇼겐왕(尚元王) 대인 1571년, 아마미 오시마 북부의 반란 세력이 진압되었다. 이로써 아마미 군도는 최종적으로 류큐 왕국 영토에 편입되었다.
이 과정의 결과, 류큐 왕국은 북쪽 아마미 오시마(奄美大島)에서 남쪽 요나구니지마(与那国島)에 이르는 류큐호(琉球弧) 전역을 아우르는 최대 판도를 형성하였다. 이는 현재 가고시마현 남부 도서 지역과 오키나와현 전체에 해당하는 범위였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반에 이르는 영토 확장은 동아시아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쇼신왕과 쇼겐왕 대에 완성된 최대 판도는 아마미에서 요나구니까지 이어지는 해상 영역을 통합한 결과였다.
이후 1609년 사쓰마 번(薩摩藩)의 침공으로 아마미 군도를 상실하였으나, 이 시기의 영토 통합은 류큐 왕국 역사에서 가장 넓은 판도를 기록한 시기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