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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5만 원이 농촌을 다시 움직인다… 2026 농어촌 기본소득, 기대와 불편의 두 얼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10개 군에서 시작되는 정책 실험의 쟁점 정리

심리적 고립 완화부터 소비 제한 논란까지, 현장 경험이 드러낸 ‘반전 포인트’ 5가지

지역경제 선순환을 막는 규제와 기술 장벽, 제도 보완의 핵심 과제

아이 울음이 사라지고 빈집이 늘어가는 농촌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그 적막을 견디며 마을을 지켜 온 주민들에게 매달 15만 원이 도착한다. 이 돈은 단순한 현금 지원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지역 소멸의 최전선에 놓인 사람들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안부를 전하고, 삶의 존엄을 확인해 주는 신호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다.

 

2026년부터 경기도 연천을 포함해 정선, 옥천, 청양, 순창, 장수, 곡성, 신안, 영양, 남해 등 전국 10개 군에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정책 설계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예산을 나눠 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 안정과 지역 내 순환을 통해 공동체의 숨통을 틔워 보겠다는 실험이다. 다만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예상과 다른 장면도 함께 드러난다. 시범사업을 둘러싼 ‘반전 포인트’는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돈의 효과는 소비보다 마음에서 먼저 나타난다. 사전 조사에서 시범지역 주민들의 삶의 의미 지표가 비교지역보다 낮게 나타났고, 걱정과 슬픔 같은 정서적 부담은 더 높게 관측됐다. 농촌의 문제를 소득만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이유다. 15만 원은 당장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매달 규칙적으로 들어오는 금액이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고립감을 완화하는 심리적 방어선으로 기능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잊히지 않았다’는 체감으로 이어지며 공동체와의 연결감을 복원했다는 증언이 나온 배경이다.

 

둘째, 선의로 만든 지침이 오히려 생존 동선을 막는 역설이 나타난다. 주유소, 편의점, 하나로마트 합산 사용 한도를 월 5만 원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농촌에서 하나로마트는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생활 인프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동거리가 길어 연료비 부담이 큰 지역에서는 주유가 생계 활동의 전제다. 실제 시범 운영에서 결제액이 가장 많이 쏠린 업종이 주유소였다는 사례는 이런 생활 조건을 반영한다. 15만 원을 지급하면서 정작 생필품과 이동에 묶어 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셋째, 읍과 면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소비 권리를 갈라놓는다. 면 지역 주민은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읍내 가맹점 사용이 제한되는 구조가 적용된다. 그러나 상권은 대체로 읍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특정 지역에서 가맹점의 상당 비율이 읍에 집중된 상황에서는, 면 주민이 필요 물품을 사기 위해 읍으로 나가도 카드 사용이 막히는 장면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도농 통합시의 면 지역이 행정구역상 ‘시’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사업 대상에서 배제되는 등 설계 단계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돼 왔다. 지역 소멸 대응을 목표로 내세운 사업이라면, 생활권 기준을 더 정교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넷째, 이 정책은 건물보다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점에서 기존 농정 패러다임과 결이 다르다. 과거에는 도로를 내고 시설을 올리면 혜택이 아래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다. 그러나 농어촌 기본소득은 개인에게 직접 안정성을 부여해 위험 회피 성향을 낮추고, 주민이 스스로 지역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돕는 방식에 가깝다. 이른바 ‘분수 효과’로 불리는 접근이다.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한 하드웨어 중심의 처방에서 벗어나, 생활의 기반을 확보한 주민이 지역 안에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철학이 담겼다.

 

다섯째, 결제 시스템은 고령층에게 높은 문턱이 될 수 있다. 잔액을 앱으로 확인해야 하고, 한도 초과 시 결제가 통째로 거부되는 구조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을 당황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 뒤 한도에 걸리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일부 금액만 분할 결제해 주지 않는다. 결국 결제대 앞에서 다시 계산을 나누거나 현금을 보태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복지 정책에 대한 ‘퍼주기’ 논쟁 뒤편에는, 현장에서는 이런 작은 불편이 반복되며 체감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존재한다.

사업의 성패는 ‘지급’ 그 자체가 아니라 ‘설계의 유연성’에 달려 있다. 남해 지역에서 축협 사업장이 제외돼 한우 농가가 불이익을 봤다는 사례처럼, 지역의 생활경제 구조를 반영하지 못한 제한은 선순환을 차단할 수 있다. 재정 구조도 숙제로 남는다. 국비와 지방비 분담 비율이 40대 30대 30으로 설계된 상황에서 도 단위 재정 여건에 따라 지원이 흔들리면 기초지자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결국 15만 원이 농촌의 미래를 여는 마중물이 되려면, 규정의 현실 적합성과 현장 지원 체계가 함께 보완돼야 한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현금 지원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공동체 연결 회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생활 인프라가 빈약한 농촌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사용 제한, 읍면 간 소비 차별, 디지털 결제 장벽은 정책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규제 완화와 사용처 설계 개선이 병행되면 지역 내 소비가 지역 활력으로 되돌아오는 신뢰 구조를 촉진할 여지가 있다.

 

매달 15만 원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이지만, 소멸 위험 지역의 생활 기반을 다시 세우는 상징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주민의 실제 동선과 소비 구조를 반영한 제도 보완이다. 지역 현실과 어긋난 제한을 풀고, 고령층의 사용 부담을 낮추는 장치가 갖춰질 때 이 정책 실험은 ‘지급’에서 ‘변화’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최병석 칼럼니스트 기자 gomsam@varagi.kr
작성 2026.02.23 10:48 수정 2026.02.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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