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 영주 김상덕 사적비
고령 독립운동가 찾기 여행 시작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김상덕 선생님을 찾기였다. 일제강점기에도 2.8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후 반민특위 위원장까지 맡은 분이다.
한국전쟁이라든지 독재 같은 뒤틀린 한국 현대사 시작이 개인적으로 반민특위 해체 시작으로 생각한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 같은 나라는 나치 정권인 비쉬 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해방 후 철저히 응징했다. 반면에 후진국이라 불리는 많은 나라는 식민지를 겪고 청산을 하지 못한 나라들이 많다. 오히려 식민지 시절 권력을 누렸던 자들이 2차 세계 대전 후 민주주의 탈을 쓰고 여전히 지배 계층에 머물러 있다.
영주 김상덕 선생님을 찾아가는 길, 길 안내기(navigation)에 주소를 입력하고 가니 연조공원이었다. 연조 공원을 한 바퀴 돌아도 선생님의 공적비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검색해서 다른 곳을 탐색해서 겨우 알아냈다.
영주 김상덕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 ‘대가야 교육원’이라는 건물을 만났다. 우수 학생을 위한 교육 시설이라는데 영어 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한글보다 영어 교육을 중시하는 그런 미래를 원했는지 생각이 든다. 무역이 중요한 한국에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중요하다. 그리고 다수가 잘하는 것보다 전문가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기관이든 개인기업이든 영어나 필요한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는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주면 좋겠다.
대가야 교육원을 지나 다른 독립운동가 공적비와 함께 김상덕 선생님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적비 안내판에는 간소하나마 선생님의 업적이 정리되어 있다. 안내판 하나에 담지 못할 만큼 영주 김상덕 선생님은 독립운동과 관련 많은 활동을 하셨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계기로 미군정 3년 동안 미루어졌던 친일파 청산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제헌헌법 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였다. 이로써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 같은 헌법적 근거를 토대로 1948년 8월 5일 제40차 국회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은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을 긴급동의안으로 내놓았다. 표결에서 재적 155명 중 가 105, 부 16의 압도적인 지지로 이 긴급동의안은 통과되었다. 긴급동의안 통과 직후 국회는 입법 제안자인 김웅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28명의 의원이 참여하는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처럼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입법 기관 국회에서 만든 위원회이다. 한민족을 배반하는 행위를 한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이지만, 행정 기관 수장 이승만이 제멋대로 해산시켜 버렸다.
반민특위를 위협하기 위해 대중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인 서울시경 최운하 사찰과장과 종로서 사찰주임 조응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 1949년 6월 4일, 체포되었다. 일제강점기 관변 단체를 이용하던 수법을 해방 후에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6월 6일, 장경근 내무차관과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의 명령으로 윤기병 중부경찰서장과 무장경찰들이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이날을 한국은 현충일로 기리고 있다.
최운하는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 출신이다. 1947년 ‘국회프락치’ 사건에 깊게 개입한 인물 중 하나이다. 장경근이라는 인물은 일제강점기 말 법조계 관료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후 자유당에서 활동하며 3.15 부정선거와 깊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민특위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EBS 제작자(PD) 였던 김진혁 교수가 ‘여파’라는 영화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파는 반민특위 자체 이야기도 있지만, 해산 후 활동했던 위원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삶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절 독립운동에 대한 보상을 당연히 받아야 할 분들이 해방된 나라에서 탄압을 받았다는 게 이상한 한국의 현실이다. 이렇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한민족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우선시하는 사대주의가 되었다. 고령에 우수한 학생을 위한 교육 시설에 영어를 우선시하는 결과가 단적으로 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미국 국회 의원에게 한국 내정 간섭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들도 있다. 그게 현대판 반민족 행위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전시작전권도 무기한으로 남에게 넘겨줘서 자주 국방을 말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입법 사법 행정 분야도 남의 나라에 의탁하려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이 생겨난 게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나치 전범을 처벌하고, 프랑스도 여전히 반민족행위자를 처벌 중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나라를 팔아 자기 영달을 챙기면 벌을 받는다는 상식이 사회에 퍼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상식이 있는 나라는 쉽게 전시작전권을 남의 나라에 넘기지 않을 것이고, 한민족 이익을 우선에 두는 다양한 입법 활동과 정책을 펼 것으로 생각한다.
관련 자료
김진혁 교수의 여파 - 반민특위 후손분들의 삶을 담은 기록 영화
https://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6472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o500500&code=kc_age_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