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오신 예수, 어둠 속에 선 인간
요한복음 7장 53절에서 8장 20절은 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예수는 감람산으로 향했다. 이튿날 새벽 성전에서 가르치던 예수 앞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이 끌려온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근거로 돌로 치자고 말하며 예수를 시험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덕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율법과 자비, 정죄와 구원, 어둠과 빛이 충돌하는 영적 현장이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돌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둠 속에 서 있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모세 율법을 근거로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려 했다.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정의 구현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를 시험하는 데 있었다.
예수는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다. 성경은 그 내용에 대해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히려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순간, 정죄하던 자들은 자신의 양심과 마주해야 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한 문장은 인간의 위선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큰 죄와 작은 죄의 구분 이전에,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가장 나이 많은 자로부터 돌을 내려놓고 떠났다. 정죄의 자리에 서 있던 이들이 먼저 물러났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예수는 여인에게 묻는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남지 않았다.
예수는 말한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선언은 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죄는 여전히 죄다. 그러나 정죄가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포된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죄인을 살린다.
이 장면은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복음의 축소판과 같다. 죄인은 살아남고, 훗날 예수는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된다. 정죄는 유보되고, 구원의 길이 열린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는 선언한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간음한 여인의 사건 직후 이 선언이 이어진다는 점은 중요하다. 방금 전까지 정죄와 수치의 어둠이 가득했던 성전 뜰에서 빛의 선언이 울려 퍼진다.
빛은 죄를 드러낸다. 동시에 길을 제시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증언이 스스로에 대한 것이라며 시비를 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근원이 아버지께 있음을 밝힌다. 이 빛은 인간적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보내심에서 비롯된 빛이다.
성전 헌금함 앞에서 이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아무도 예수를 붙잡지 못했다.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원의 시간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오늘날 신앙 공동체 역시 종종 돌을 들고 서 있다. SNS와 미디어 공간에서 타인의 실수와 죄를 빠르게 단죄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8장은 묻는다. 당신의 손에 들린 돌은 무엇인가.
빛 되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타인을 어둠 속에 밀어 넣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빛으로 인도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용서는 죄의 묵인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정죄의 문화가 팽배한 시대일수록 교회는 자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방식은 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요한복음 7장 53절부터 8장 20절은 인간의 어둠과 하나님의 빛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고 떠났지만, 예수의 말씀은 남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이 빛은 정죄를 넘어 생명으로 인도한다. 묵상은 단순한 성경 해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돌을 들 것인가, 아니면 빛을 따를 것인가. 선택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