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9005101102414487, DIRECT, f08c47fec0942fa0

[에세이 칼럼] 123화 일곱 살, 첫 피자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내 인생의 첫 피자는 이미 오래전에 식어버렸지만, 

설렘만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서 가만히 김을 올리고 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흙빛으로 시작된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풍경은 늘 흙빛이었다. 집 앞에는 밭이 있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람의 냄새가 먼저 달라졌다. 면내에 나가야 겨우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고, 우리 동네는 그보다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닿는 곳이었다. 하루의 속도는 느렸고, 저녁은 늘 일찍 내려앉았다. 그 시절의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조용했고,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범위만큼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막내이모의 손을 따라 나선 하루

그 무렵 우리 집에는 막내이모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모가 내 손을 잡았다. 옆동네 시내에 다녀오자는 말이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내는 어린 내 눈에 지나치게 밝았다. 유리창마다 불빛이 맺혀 있었고, 거리에는 낯선 냄새들이 뒤섞여 흘렀다. 나는 이모의 손을 놓칠까 봐 더 단단히 움켜쥐고 걸었다. 이모는 시내 중심에 있던 피자 전문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고소한 냄새가 밀려왔다. 각진 테이블, 반짝이는 식기,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 어딘가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경양식 집과 닮아 있었다.

 

세상이 넓어지던 한 입의 순간

일곱 살의 나는 의자에 앉아 한동안 피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치즈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조심스럽게 한 입을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던 따뜻함과 고소함은 그전까지 알던 음식의 기억과 분명히 달랐다. 함께 나온 스파게티는 더 낯설고, 더 황홀했다. 포크에 면을 감아 올리는 동작마저 괜히 어른이 된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날의 식사는 단순한 외식이 아니었다. 내게는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경험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이는 것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다시 논과 밭이 이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언젠가 저 번화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지금도 가끔 그 시내를 지난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중심지였지만, 요즘은 임대 안내가 붙은 상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지만, 그때의 반짝임과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그 거리를 지날 때면, 피자를 바라보던 일곱 살의 눈빛이 조용히 떠오른다.

 

기억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지금 내 곁에는 일곱 살이 된 아들이 있다. 나는 종종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함께 음식을 먹는다. 피자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 아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을 장면 하나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설날, 막내이모를 만났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모는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우리 그때 피자 먹으러 갔었지. 네가 그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기억 속의 불빛도 한층 또렷해졌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으며, 어떤 장면을 함께 만들고 있는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경험은 거창한 사건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선 짧은 외출, 평범한 식탁, 따뜻한 한 끼가 오히려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 역시, 훗날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장면으로 남게 될까. 우리는 충분히 그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은 한 끼가 남기는 긴 여운

돌이켜 보면 인생의 첫 경험이라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한 끼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 인생의 첫 피자는 이미 오래전에 식어버렸지만, 그날의 설렘만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서 가만히 김을 올리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깊게 삶 속에 남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또 한 명의 일곱 살이 자신의 첫 장면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 해당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일상생활소통연구소’에 게시한 문학수필을 보통의가치 뉴스 칼럼식으로 바꿔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2.27 22:22 수정 2026.02.27 22:35

RSS피드 기사제공처 : 보통의가치 미디어 / 등록기자: 김기천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엔비디아, 실적은 역대급인데 왜 주가는 폭락할까?
안성 동신산단, 반도체 소부장 거점 조성 본격화
서울 집값 폭락? 당신이 몰랐던 13%의 진실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 재건축 지연 논란까지 확산
미쳤다 서울 집값!” 1년 새 13% 폭등, 내 집 마련 꿈은 신기루인가..
몸짱 되려다 몸 망친다! SNS에서 산 그 약?, 사실은 독약!
왜 나만 매번 상처받을까?
"앱 노가다 끝!" 바쁜 현대인을 위한 삼성의 새로운 치트키
도심 한복판 ‘비밀의 숲’ 열렸다... 물향기수목원서 천연기념물·멸종위기..
의외로 모르는 임윤찬 숨겨진 레전드 Autumn Leaves
지휘자만 모르게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
지휘자가 클래식 음악에 중요한 이유
트럼프의 관세 장벽이 무너졌다. (美 대법원 6:3 판결)
비아그라 먹었더니… 심장이 좋아진다고?
정부가 찍었다… 아주대 성균관대, 바이오 판 뒤집나
코스피 5000 돌파? 내 지갑은 꽁꽁!!
숲속에 온 듯, 마음이 편해지는 뉴에이지 음악 테라피
유명한 클래식명곡 베스트 100곡 모음, 모차르트,쇼팽,베토벤,바흐,리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1위 #라흐마니노프 #조성진
내귀에 익숙한 곡인데 제목이?? 클래식 명곡을 찾아보세요 #클래식 #pi..
익숙한 클래식 음악 20가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베스트 19곡 연속듣기 #클래식명곡
“루바토가 많다”가 문제가 되는 순간#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루바..
경기도 약수터 싹 바뀐다 24곳 전면 개선
위기 넘어 완성한 역전 드라마…여자 쇼트트랙 계주 금빛질주.
서울 아파트 전세 7억? 내 집은커녕 빌려 살기도 겁난다
내 돈이 사라지는 0.1초의 늪… 당신의 스마트폰은 지금 안전한가?
미래가 두려울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마태복음 6장 34절)#성경이말..
유튜브 NEWS 더보기

AI가 내 말을 대신 보낸다 제미나이 권한 설정 점검 필요

삼성전자 18만 원 돌파! JP모건 추월한 HBM4의 위력 (20만 전자 전망)

일론 머스크의 경고, 2030년 당신의 책상은 사라진다

부의 이동심리, 타워팰리스가 던지는 경제적 신호

그대는 소중한 사람 #유활의학 #마음챙김 #휴식

나 홀로 뇌졸중, 생존 확률 99% 높이는 실전 매뉴얼

숨결처럼 다가온 희망. 치유.명상.수면.힐링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지다./유활도/유활의학/유활파워/류카츠대학/기치유

O자 다리 한국, 칼각 일본? 앉는 습관 하나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겨울마다 돌아오는 ‘급성 장폭풍’… 노로바이러스, 아이들 먼저 덮쳤다

아오모리 강진, 철도·항만·도심 모두 멈췄다… 충격 확산

경기도, 숨겨진 가상자산까지 추적했다… 50억 회수한 초정밀 징수혁신으로 대통령상 수상

간병 파산 막아라... 경기도 'SOS 프로젝트' 1천 가구 숨통 틔웠다 120만 원의 기적,...

100세 시대의 진짜 재앙은 '빈곤'이 아닌 '고독', 당신의 노후는 안전합니까...

브레이크 밟았는데 차가 '쭉'... 눈길 미끄러짐, 스노우 타이어만 믿다간 '낭패...

"AI도 설렘을 알까?"... 첫눈 오는 날 GPT에게 '감성'을 물었더니

응급실 뺑뺑이 없는 경기도, '적기·적소·적시' 치료의 새 기준을 세우다

GTX·별내선·교외선이 바꾼 경기도의 하루… 이동이 빨라지자 삶이 달라졌다

행복은 뇌에서 시작된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10가지 습관

행복은 뇌에서 시작된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10가지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