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빛으로 시작된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풍경은 늘 흙빛이었다. 집 앞에는 밭이 있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람의 냄새가 먼저 달라졌다. 면내에 나가야 겨우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고, 우리 동네는 그보다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닿는 곳이었다. 하루의 속도는 느렸고, 저녁은 늘 일찍 내려앉았다. 그 시절의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조용했고,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범위만큼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막내이모의 손을 따라 나선 하루
그 무렵 우리 집에는 막내이모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모가 내 손을 잡았다. 옆동네 시내에 다녀오자는 말이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내는 어린 내 눈에 지나치게 밝았다. 유리창마다 불빛이 맺혀 있었고, 거리에는 낯선 냄새들이 뒤섞여 흘렀다. 나는 이모의 손을 놓칠까 봐 더 단단히 움켜쥐고 걸었다. 이모는 시내 중심에 있던 피자 전문점으로 나를 데려갔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고소한 냄새가 밀려왔다. 각진 테이블, 반짝이는 식기,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 어딘가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경양식 집과 닮아 있었다.
세상이 넓어지던 한 입의 순간
일곱 살의 나는 의자에 앉아 한동안 피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치즈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조심스럽게 한 입을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던 따뜻함과 고소함은 그전까지 알던 음식의 기억과 분명히 달랐다. 함께 나온 스파게티는 더 낯설고, 더 황홀했다. 포크에 면을 감아 올리는 동작마저 괜히 어른이 된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날의 식사는 단순한 외식이 아니었다. 내게는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경험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이는 것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다시 논과 밭이 이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언젠가 저 번화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지금도 가끔 그 시내를 지난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중심지였지만, 요즘은 임대 안내가 붙은 상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지만, 그때의 반짝임과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그 거리를 지날 때면, 피자를 바라보던 일곱 살의 눈빛이 조용히 떠오른다.
기억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지금 내 곁에는 일곱 살이 된 아들이 있다. 나는 종종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함께 음식을 먹는다. 피자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 아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을 장면 하나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설날, 막내이모를 만났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모는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우리 그때 피자 먹으러 갔었지. 네가 그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기억 속의 불빛도 한층 또렷해졌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으며, 어떤 장면을 함께 만들고 있는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경험은 거창한 사건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선 짧은 외출, 평범한 식탁, 따뜻한 한 끼가 오히려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 역시, 훗날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장면으로 남게 될까. 우리는 충분히 그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은 한 끼가 남기는 긴 여운
돌이켜 보면 인생의 첫 경험이라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한 끼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 인생의 첫 피자는 이미 오래전에 식어버렸지만, 그날의 설렘만은 지금도 마음 한쪽에서 가만히 김을 올리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깊게 삶 속에 남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또 한 명의 일곱 살이 자신의 첫 장면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 해당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일상생활소통연구소’에 게시한 문학수필을 보통의가치 뉴스 칼럼식으로 바꿔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