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세상에 슬픔도 없고, 고통과 허무함, 상처받을 일도 없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곳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라 부를 수 있을까. 고통이 없는 삶이 과연 행복일까.
얼마 전 로이스 로리의 소설 《더 기버 The Giver》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작품 속 공동체는 굶주림이나 다툼과 차별, 상처와 괴롬이 없는 그야말로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 완성과 같은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아무런 갈등이 없는 그곳의 공기는 평온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평온함의 이면에는 기쁨과 사랑의 감정이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곳엔 웃음의 깊이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흔들리는 사랑의 떨림도 없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감각한 감정 없는 삶만이 남는다.
주인공 조너스는 그 완벽한 공동체를 탈출하여 처음으로 세상의 사랑과 기쁨,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다. 눈 내리는 언덕에서 썰매를 타며 느끼는 즐거움은 이전 공동체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감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쁨은 추위와 두려움과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 철학자 플라톤은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라 했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더러운 진흙투성이 물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걸 본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비 온 뒤 서늘한 공기와 찬란한 햇살의 충돌로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 삶에서 고난이라는 그림자를 지워 버린다면, 기쁨이라는 빛을 비춰낼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 세계를 둘러본다. 때로 우리는 좌절하고, 자존심에 한없이 작아 보이는 순간을 맞이한다. 어디 한 두번 산산조각 난 파편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 힘겨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이 웃고, 더 진심으로 아픔을 보듬어 주고, 인간애를 나누며, 오늘을 건낸다. 비록 고난이 있다 해도, 지금 이 땅에 숨 쉬며 살아가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지구상에 이데아를 표방해온 공산 체제는 몰락 실패했다. 땀방울 없는 달콤한 국민소비쿠폰은 사회주의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우리 인간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 라 했다. 우리는 종종 각자 삶의 흉터를 명함처럼 들고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비바람 치는 설산 같아도, 나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감당하는 삶. 자신만의 독보적인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일본에는 상처 난 도자기를 다시 살려내는 ’킨츠키(Kintsugi)‘ 의 독특한 기법이 있다. 도자기에 깨진 틈을 가리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귀한 금가루로 장식할 때 그릇은 이전보다 아름다움과 훨씬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그렇다. 저마다 결핍, 분노, 탐욕으로 어우러진 균열 된 틈새가 있다. 우리는 금보다 귀한 ‘참나’(True Self)를 찾아 나답게 살아갈 때, 깨진 틈새는 메워 지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내 손에 쥔 것을 놓아주고, 이기적인 좁은 마음이 깨트려질 때, 그 틈새에는 행복의 푸른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내 삶의 그릇에 사치스런 욕망을 걷어내고, 여행이나 책 읽기. 명상. 신앙, 운동. 산책. 재능기부. 식사 나눔, 인연 가꿈, 음악 선율의 힐링 등을 담아 나다운 삶으로 가꾸어가자.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과 지혜를 거머쥔 솔로몬 왕은 노년에”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을 가리고 있던 화려한 껍데기를 벗어 던진 후, 본질의 ‘참나’ 모습에 다가서는 교훈을 심어준다.
어쩌면 진정한 삶이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참나’를 찾아 나답게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묵묵이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
양홍석
전)문화체육관광부 일반직고위공무원
전)2014인천아시안게임 행사본부장
전)강원랜드 카지노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