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도시 징더전(景德镇). 우리는 흔히 '도자기' 하면 징더전을 떠올리지만, 정작 이 도시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육로 교통이 불편했지만, 대신 '물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물길은 단순한 운송로를 넘어, 동서양의 문명을 이어주는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되었다.

창장(昌江), 도자기 실크로드의 시작
징더전의 북쪽, 안후이성(安徽省) 치먼현(祁門縣)에서 발원한 창장(昌江)은 이 도시를 관통하며 남쪽으로 흐른다. 총 길이 182km의 이 강은 징더전 사람들에게 '모친하(母親河)'라 불리며, 도자기 원료를 실어 나르고 완성된 그릇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생명선 역할을 했다.
창장(昌江)에는 동하(東河), 난하(南河), 시하(西河), 베이하(北河) 등 네 개의 주요 지류와 50여 개의 작은 지류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당송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 강줄기를 따라 수많은 부두가 들어섰다. 관인각(觀音閣)에서 샤오강쭈이(小港咀)까지 약 6.5km 구간에만 해도 황자저우(黃家洲), 시과저우(西瓜洲), 바이텐저우(拜天洲)라는 '삼저우(三洲)'와 쉬자마터우(許家碼頭), 차오자마터우(曹家碼頭), 후난마터우(湖南碼頭), 류자마터우(劉家碼頭)라는 '스마터우(四碼頭, 네개의 부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청나라 시인 정팅구이(鄭廷桂)는 '타오양주즈츠(陶陽竹枝詞)'라는 시에서 당시 부두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백토(白土)를 실은 배 창강(昌江) 건너 오니,
포목과 차, 야단법석 부두에 가득하네.
점원들은 수표(籌票) 받아 숫자 기록하니,
강물 따라 흐르는 도자기의 노래."
두 갈래 길, 하나의 바다
징더전에서 출발한 도자기는 창장(昌江)을 따라 포양호(鄱陽湖)로 모인 뒤, 크게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
첫 번째 길은 창장(長江, 양쯔강)을 거쳐 중국 내륙 각지로 향하는 북쪽 길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세계로 가는 길'은 남쪽으로 향했다.
도자기를 실은 배들은 포양호(鄱陽湖)에서 난창(南昌)을 지나 간장(贛江)으로 접어든다. 이 강을 따라 남하하면 장시성(江西省)의 지안(吉安), 완안(萬安)을 거쳐 간다. 이후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광둥성(廣東省)으로 향하는 길이다. 간장(贛江)을 끝까지 내려가 광둥성(廣東省)에 도착하면, 배에서 내린 도자기는 육로를 통해 다시 바다로 나갔다. 이 경로는 주로 광저우(廣州)를 통해 남중국해로 진출하는 해상실크로드의 서쪽 루트였다.

다른 하나는 푸젠성(福建省)으로 향하는 길이다. 장시성(江西省)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푸젠성(福建省)으로 들어서면, 창팅(長汀)을 거쳐 장저우(漳州)에 이른다. 이곳에서 다시 주룽장(九龍江)을 따라 푸저우(福州)로 향하거나, 샤먼(廈門) 방향으로 나아가 바다를 만났다.
강을 건너 바다로, 바다를 건너 세계로
이렇게 모인 도자기는 최종적으로 바다를 만났다. 광저우(廣州)에서 출항한 도자기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으로, 푸저우(福州)와 샤먼(廈門)을 떠난 도자기는 대만 해협을 건너 일본과 동남아, 더 나아가 유럽으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해상실크로드'였다. 비단과 도자기, 향신료가 오간 이 바닷길은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라 문명과 문명을 잇는 가교였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항상 징더전(景德镇)이 있었고, 그 징더전을 세상에 연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창장(昌江)이라는 강줄기였다.
징더전 도자기 박물관의 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징더전의 도자기는 흙과 불의 예술입니다. 그러나 그 예술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물길 덕분이었습니다. 강은 도자기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바다는 그 생명을 세계로 퍼뜨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아름다운 중국 도자기들. 그 하나하나에는 흙과 불의 혼뿐 아니라, 강물 따라 흐르고 바다를 건넌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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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