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대전 MBC
3.8 의거일을 맞이하여 1960년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잠깐 살펴보려 한다. 1960년 독재정권은 3월 15일 대통령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러 가지 부정을 자행했다.
가장 먼저 항거해서 일어난 곳은 대구였다. 대구는 2월 28일 선거를 앞두고 자행되는 부정 행위에 맞서 학생들이 의거를 일으켰다. 자유당은 2월 28일 민주당 선거 유세에 시민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여러 가지 행사에 동원했다. 독재 시절이었기에 관제 시위에 동원되는 경우도 많았고, 이처럼 민주당 선거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각 기관에 행사를 강요했다.
이에 반발하여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이런 행사 동원에 항의하는 시위를 했다. 1500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했다. 삼일 만세운동이 동경유학생들의 2. 8 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이는 4.19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학생들의 의거는 대구 뿐 아니라 대전에서도 일어났다. 3월 8일 대전시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야당 부통령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와 때를 맞추어 대전 고등학생들이 일어났다.
대구 시위 진압은 학부모 감시로 끝났지만, 대전 진압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대전고 송병준 학생은 경찰 방망이로 맞아 고막이 터지고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 당일 마산에서는 3.15의거가 일어났다. 항의하는 시민에게 독재는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무학 초등학교 앞 진압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 독재는 연행한 시민을 고문하기까지 했다. 경찰과 정치 깡패는 일제강점기 행해졌던 고문과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해방된 조국에서 시민에게 했다. 그리고 이들을 공산당 폭도로 몰아 자발적 민주화 의거 의미를 퇴색시키려 했다.
자유당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선거 전인 1954년 이승만이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이때 정족수 미달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사오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반올림 수학공식을 만들었다.
이를 만든 이가 수학자 최윤식이라는 인물이다. 오비이락처럼 그는 후에 승승장부하며 살았다. 1954년 대한수학회가 창립되자 초대 회장이 되었고 미국 유학을 갔문교부로부터 교육자 근속상을 수여받았다다 와서 서울대학 대학원장·문교부 고시위원 등을 지냈다.
1960년 당시 대통령 선거는 관례적으로 5월에 실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유력한 대항마인 야당의 조병옥 후보가 신병 치료차 미국에 가 있던 1960년 2월 3일, 정부는 별안간 선거를 3월 15일로 두 달이나 앞당겨 치르기로 했다. 야당이 선거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추측을 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이승만은 반공을 십분 활용하여, 9개의 반공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반공청년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야당 선거 운동을 훼방 놓으며 많은 시민을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간부들이 구타당하는 듯 56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사전 투표 및 투표함 바꿔치기로 표를 확보했다. 선거일 전, 이미 사망했거나 이사 간 사람 등 허위 유권자 명의로 투표용지를 미리 투표함에 넣어두거나,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했다.
4할 사전 투표라고 해서 4할의 표를 미리 선거함에 집어넣었다. 전체 유권자의 40%가량이 선거도 시작하기 전에 비어있어야 할 투표함에 자유당에 투표한 용지가 들어가 있었다.
올빼미 작전이라 해서 개표 과정에서 정전 등을 빌미로 혼란을 틈타 투표용지 뭉치를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선거의 기본인 비밀 투표가 지켜지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비밀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투표소에 들어가 서로 감시하며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했다. 완장을 찬 사람이 개표장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야당 측 참관인을 투표소에서 쫓아내거나 감금하여 부정행위를 감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장기 집권을 하고 싶게 만든 동기가 무엇인지 가끔 질문이 든다. 철학자나 심리학자 등이 이런 부분을 연구해서 논문을 내면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부정 선거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작은 사건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 2.28, 2.8, 3.15 의거가 있었기에 4.19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민주화운동이나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다수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래도 비밀 투표함에서 원하는 사람을 뽑을 기회가 주어진다.
간단하고 분명한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기까지 한국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싸운 많은 분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 년 중 다른 날은 잊고 살더라도, 대구의 2.28 기념 도서관, 3.8 대전 민주 의거 기념관, 마산 3.15 의거 발원지기념관 등을 한 번 쯤 가볼 때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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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의거 https://38.or.kr/38_patriotic1.php
3. 15 부정선거 https://theme.archives.go.kr/next/history/samilos/sub3_4.do
https://www.nec.go.kr/site/nec/ex/bbs/View.do?cbIdx=1175&bcIdx=17391
사사오입:
2.28 대구 학생 시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