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딥 테크 스타트업의 '미래'에 투자하다
2010년대 초반,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투자유치에 실패해 사업을 접어야 했던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사연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아픈 경험이 아닙니다. 특히 딥 테크(Deep Tech)라 불리는 최첨단 기술 산업에서는 초기부터 지속적인 자금이 필수적이지만, 긴 개발 주기와 상업화까지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싱가포르가 딥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무려 1조 3천억 원(10억 달러)을 추가 투자하기로 나섰습니다.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싱가포르의 전략적 행보는 자국 내 산업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발표한 이 계획의 핵심은 딥 테크 스타트업들의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딥 테크 기술은 혁신적이긴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 높은 개발 비용과 긴 상업화 기간으로 인해 자금력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Startup SG Equity(SSGE)'라는 프로그램에 10억 달러를 추가로 쏟아붓기로 했습니다. Alvin Tan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국무장관은 2026년 3월 2일 MTI 위원회 보급 토론에서 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Tan 장관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벤처캐피털들과 협력하며 딥 테크 스타트업이 빠르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요? SSGE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초기 및 성장 단계의 딥 테크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글로벌 딥 테크 벤처 캐피털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 오브 펀드(Fund-of-Funds)' 방식입니다. 이러한 이중 접근법은 스타트업의 발전 단계에 따라 맞춤형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합니다.
혜택을 받는 대표적 예시는 유전자 치료 스타트업 'Nuevocor'입니다. Tan 장관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성장 단계 딥 테크 스타트업으로 이 기업을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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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evocor는 2025년 5월 무려 4,500만 달러(약 6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으며,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임상 시험 진입을 준비 중입니다. 이런 성장의 밑바탕에는 SSGE를 통해 유치한 자금 지원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선제적 투자가 민간 자본 유치의 신뢰 기반을 마련해준 셈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와 엣지 기반 제어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유연한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Blue Whale Energy(BWE)'가 있습니다.
이 기업은 가상 발전소(VPP) 플랫폼을 활용하여 에너지 산업 혁신을 꿈꾸며 초기 기술 개발 및 배포 단계를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Tan 장관은 BWE와 같은 초기 단계 딥 테크 기업들도 SSGE 자금 지원을 통해 민간 자본을 유치하고 대규모 배포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성장 발목 잡는 '죽음의 계곡'…정부의 해법은?
싱가포르 정부의 이번 투자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투자를 통해 최고 수준의 성장 투자자들을 싱가포르로 유치하고, 이들이 보유한 자본,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전문성을 확보하려 합니다. 이는 딥 테크 스타트업이 싱가포르를 본거지로 삼으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즉, 싱가포르는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글로벌 딥 테크 생태계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Tan 장관은 이번 이니셔티브의 핵심 목표가 딥 테크 스타트업이 사업을 확장하고, 팀을 강화하며, 싱가포르를 본거지로 삼으면서도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딥 테크 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싱가포르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장기적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데는 일각에서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첫째는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이런 투자가 성공적인 결실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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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투자는 리스크가 높기로 유명하며, 모든 지원 기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딥 테크 분야의 특성상 실패는 불가피하며, 상당수의 프로젝트가 기대했던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둘째로, 정부 주도 투자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민간 자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시장 주도의 건강한 경쟁 구조가 정부 개입으로 인해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의 전략은 명확한 논리를 제시합니다.
정부가 공공 자본을 전면에 내세워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도록 돕는다면, 이는 오히려 민간 투자자들이 동참할 수 있는 안전성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펀드 오브 펀드 방식은 민간 투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프로젝트에 초기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이후의 민간 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Nuevocor와 BWE의 사례는 정부 투자가 민간 투자를 구축(crowding out)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인(crowding in)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부의 선제적 투자가 해당 기업의 신뢰성을 높이고, 이것이 후속 민간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이런 모델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강력한 신뢰와 네트워크 연결성을 제공하며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딥 테크 분야는 기술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특성상,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자본 공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러한 산업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 전체를 육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왜 한국이 주목해야 할 싱가포르의 선택인가
한국 독자들에게 이 소식은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싱가포르의 움직임은 딥 테크 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삼을 때 필요한 요소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한국은 이미 AI,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기술 등 딥 테크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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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분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 협력 체계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한국 정부도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펀드 오브 펀드와 같은 구조적 지원이 확장되어야 보다 혁신적인 환경이 마련될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정부 투자가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함께 제공하는 전략적 투자여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또한 초기 단계와 성장 단계 기업에 대한 차별화된 지원 전략, 그리고 민간 자본 유치를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의 중요성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는 현재, 싱가포르의 사례는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딥 테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지만, 일단 성공하면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투자와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에서 벗어나, 기술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조성해야 할 때입니다. 싱가포르가 10억 달러라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딥 테크가 미래 경제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딥 테크 스타트업들이 그들의 '죽음의 계곡'을 넘어설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정부의 역할, 민간의 참여,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세 가지 축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딥 테크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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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