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7 정상회의서 '항복 임박' 주장… 에너지 패권 둘러싼 러·미 밀월 의혹 속 보이지 않는 종전 시계
한 시대의 운명이 온라인 화상 화면 속 짧은 대화로 오간다. 지난 11일, 모니터 너머로 마주 앉은 G7 정상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당혹감이 교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어조로 선언했다. "이란은 항복하기 직전이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정세 보고를 넘어, 수십 년간 이어온 중동의 거대한 축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 승전보 같은 외침 뒤편에는 베일에 싸인 종전 시점과 러시아를 향한 묘한 예외 조항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오늘 우리 세계는 평화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인가, 아니면 더 거대한 혼돈의 서막을 목도하고 있는 것인가.
왜 지금 '항복'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보는 이란은 더 이상 조직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지도자 부재'의 상태다. 그는 이번 G7 정상들과의 회의에서 이란을 "우리 모두를 위협하던 암(cancer)"이라 지칭하며, 그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구출했음을 강조했다. 미국이 판단하는 이란의 내부 사정은 처참하다.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인물조차 식별되지 않을 만큼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백악관의 시각이다.
이러한 '항복 임박설'은 단순히 군사적 압박의 결과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향후 5년 이내에 이란과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소모전을 피하려고 "지금 일을 끝내야 한다"라는 확고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지지부진한 중동 개입 정책에서 벗어나 단기간에 압도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이른바, '비즈니스형 종전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G7의 우려와 트럼프의 마이웨이
그러나 화상 회의에 참석한 유럽 리더들의 시선은 냉철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의 낙관론에 제동을 걸었다. 그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세계 경제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즉각 확보하라"는 것이다.
특히 유럽 정상들은 이 혼란을 틈타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챙기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했다. "러시아가 전쟁을 이용해 제재 면제라는 특혜를 입어서는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작 미국의 움직임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회의 종료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트럼프의 측근 스티브 위트코프는 플로리다에서 푸틴의 복심 키릴 드미트리에프와 마주 앉았다. 겉으로는 에너지 위기 해결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억류된 러시아 석유의 거래를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파격적인 조치가 뒤따랐다.
4월 11일까지의 유예, 그리고 엇갈린 시계
미 재무부는 스콧 베센트 장관의 주도하에 '러시아산 유류 거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3월 12일 이전에 선적된 러시아 석유만, 4월 11일까지 하역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중동 전쟁으로 치솟은 유가를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반면 이란 공격을 언제 멈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는 끝내 확답을 피했다. "타이밍이 문제"라는 모호한 답변만을 남긴 채, 공격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게 만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니 상업용 선박들이 통항을 재개해도 좋다는 트럼프의 호언장담과 달리, 현장의 선원들이 느끼는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무너진 성벽 위에서 부르는 평화의 노래
국제 정세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누군가는 승리를 외치고, 누군가는 실익을 계산한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비친 것은 화상 화면 속 화려한 지도자들의 얼굴이 아니라, 지도에서 지워져 가는 이란의 평범한 가정집들과 호르무즈의 거친 파도를 넘는 선원들의 마디 굵은 손마디였다.
한 국가를 '암'이라 규정하고 도려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통은 그 땅에 뿌리 내린 무고한 생명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리더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는 그곳에도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가 있고, 전쟁 없는 하늘을 꿈꾸는 아이가 있다. 정치가들이 '항복'과 '면제'를 논하는 동안, 우리는 그 이면에서 바스러지는 인간의 존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의 항복 선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총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심어질 때 완성된다. 5년 뒤의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해 오늘 더 큰불을 질러야 한다는 논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승전보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온기 있는 평화의 악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