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시신 수습하고 단종의 초혼제를 지낸,
한국 최초의 여행가이자 소설가 김시습의 재발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인기몰이 중이다. 비운의 임금 단종의 죽음을 보며 눈물짓는 이들이 많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매월당 김시습은 단종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탕유(호탕한 유람)에 나선 자체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울분에서 비롯됐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 5명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고 작은 돌로 묘표를 대신한 사람이 김시습이다. 충남 공주 동학사에서 단종의 초혼제를 지낸 사람도 김시습이다. 한명회가 압구정에 정자를 짓고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젊어서는 사직을 떠받들고)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늙어서는 강호에 노닌다)라고 쓴 글을 보고 靑春危社稷(청춘위사진,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라고 고친 이도 김시습이었다.
이 책은 이런 김시습의 일생에 관한 책이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김시습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쉽게 서술하고 있다. 곳곳에 첨부한 현장 사진은 과거를 넘어 현재 살아있는 ‘청년 김시습’으로 다가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시습은 세 살 때부터 한시를 짓고 다섯 살 때부터 사서삼경을 읽었다. 하지만 천하를 가르치고 거느릴 줄 알았던 영특함은 암울한 시절 인연에 꺾이고 만다. 금이야 옥이야 아껴주던 어머니, 외할머니, 세종대왕을 잇달아 잃으면서 이미 조짐이 보였다. 부친은 계모를 들였고 김시습의 저작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급기야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은 그의 삶을 주변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비틀었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시습은 이 소식을 듣자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불살랐다. 사흘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하다가 내린 결론은 ‘탕유(宕遊)’였다. 조선의 국토를 직접 돌아보며 민중의 애환을 느껴보겠다는 당찬 결단이었다. 책은 이후 김시습이 어디를 여행했는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무엇을 썼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점철돼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몸을 의탁했던 곳은 사찰이었다.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한 많은 몸을 벗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이자 최초의 소설가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이자 최초의 소설가로서 김시습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절의의 인물로서 김시습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설화와 역사에 바탕을 둔 <금오신화>를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가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금오신화>에 등장한 다섯 이야기의 무대는 모두 우리나라다. 등장인물도 마찬가지고 배경도 홍건적의 난, 왜구의 침입 등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뒀다. 귀신, 용궁, 염라대왕, 부처와의 내기 등 민간 설화에 바탕을 두는 등 혁신적 시도를 한 새로운 이야기가 <금오신화>다.
강토의 북쪽 끝 신의주에서 남해안 끝까지 전국 팔도를 유람한 인물도 그가 최초이다. 조선 초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전국을 돌아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와 결기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돌아본 문화유산 등을 시로 읊어 남기는 시인이자 문학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국토를 탕유하는 과정은 백성의 삶에 공감하고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기록을 남기는 창작의 과정이었다. 이 책은 그런 김시습의 행적을 따라간다. 그리고 승려이자 사상가이고 철학가이면서 문학인이었던 르네상스적 인간의 삶을 오늘에 되살린다. 그가 국토를 주유하며 길 위에서 삶을 보낸 시기는 20~30대 청년기였다.
사찰, 사당, 시비, 초상화…김시습의 흔적을 찾아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김시습의 흔적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 있는 부여 무량사를 비롯해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들 13곳, 그의 시를 새긴 시비 11곳, 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6곳이 전국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기록했고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현장을 답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시습의 흔적을 따라가고픈 이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것이다.
[목차]
목차
시작하며─9
1장. 호탕한 유람, 길에 나서다─15
왕도의 시대는 가고 패도의 시대가 왔다. 청년 김시습은 실망과 분노를 주체할 길 없어 지배층을 떠나 백성이 있는 삶의 현장, 국토의 아름다움과 역사 속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치유의 과정이자 도전의 길이었다.
2장. 관서·관동기행, 우리 땅과 문화를 인식하다─49
신화와 민속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조선의 땅에 대한 그의 사랑을 더욱 깊게 했다. 유·불·도(儒佛道)를 넘나드는 회통(會通)사상의 골간이 이때 형성됐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 그러나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불현듯 떠오르는 슬픔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3장. 호남·경주기행, 최초의 소설을 쓰다─63
역사를 시로 읊으며 반복되는 패도의 시대를 개탄하고 피폐한 백성의 삶에 공감했다. 관서·관동·호남기행에서의 역사와 신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로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문화의 변혁이자 혁신이었다.
4장. 수락산·관동 시절, 뜻은 컸으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133
권력은 바뀌었으나, 시대는 그대로였다. 한 가닥 희망은 사라지고 뜻 맞는 이들과 소요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씩씩한 뜻은 무너지고 수염만 쓰다듬으며 끝없이 회의하는 날들, 김시습에게는 힘든 시기였다.
5장. 무량사에서 전설이 되다─159
김시습이 길 위의 삶을 마친 곳은 부여 무량사다. 스스로를 몽사노(夢死老: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칭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토를 주유하며 수많은 시문(時文: 시와 글)을 남긴 ‘영원한 청년’이었다.
부록
김시습을 어떻게 볼 것인가─ 179
김시습, 이렇게 왔다 갔다(연보)─ 187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서…초상화·사당·시비(詩碑)─ 189
-초상화
•무량사 초상화(보물 제1497호)
•부여 청일사 초상화
•강원 청평사 초상화
•부산 상현사 초상화
•경주 기림사 초상화
•매월당시사유록 초상화
•일본 천리대 초상화
-사찰 및 사당
충청도
•부여 무량사(無量寺)
•부여 청일사(淸逸祠)
•공주 동학사 숙모전(肅慕殿)
강원도
•철원 구은사(九隱祠)
•영월 창절사(彰節祠)
•강릉 청간사(淸簡祠)
•강릉 창덕사(彰德祠)
경상도
•경주 기림사(祗林寺)
•부산 금정구 상현사(上賢祠)
•함안 서산서원(西山書院)
•울진 고산서원(孤山書院)
전라도
•김제 삼현서원(三賢書院)
•고흥 재동서원(齋洞書院)
-시비(詩碑)
충청도
•부여 무량사 시비
•청주 상당산성 시비
강원도
•백담사 시비
•강릉 김시습 기념관 시비
•대관령 시비
경상도
•팔공산 시비
•문경새재 시비
서울·경기
•중계동 시비
•용산 시비
•종로 안국동 시비
•양평 용문산 시비
참고문헌─221
사진출처─222
[저자 소종섭 소개]
1966년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태어났다. 시사저널·아시아경제 편집국장을 지냈다. 현재 아시아경제 정치부 국장으로 유튜브 채널 ‘소종섭의 시사쇼’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사단법인 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금까지 60차례 ‘김시습 답사’를 진행했다. 유튜브 채널 '소종섭의 상식학교' 운영자이기도 하다. <백제의 혼 부여의 얼> <부여의 마을이야기> <한국의 혼맥> <정두언, 못다 이룬 꿈>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