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아웃 시대의 실존철학 - 9. 우리는 왜 점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직업을 선택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건 정말 내가 선택한 삶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고민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깊은 혼란이다.
우리는 분명 선택하고 있지만
그 선택이 진짜 자신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수많은 ‘성공의 모델’을 제시한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높은 연봉
사회적 인정
이러한 기준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삶’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문제는 이 기준이 개인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욕망을 묻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 선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믿는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직업도, 삶의 방식도, 관계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그러나 선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선택이 많아질수록
비교의 기준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
하지만 그 ‘원함’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질문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경우 우리의 욕망은
사회적 기준이 내면화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남들이 인정하는 삶
남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삶
이러한 기준들이 쌓여
하나의 욕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게 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가진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삶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선택에는
불확실성과 책임이 함께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타인의 기준으로 사는 삶은
결국 공허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진짜 자신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이 욕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자기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