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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4월의 문턱에서: 침묵을 뚫고 올라오는 부활의 서사

내면의 길을 내는 신성한 불청객, 봄비

'있는 그대로'를 부르는 자비의 음성

방향을 꺾지 않는 생명의 의지

사월의 문턱에서 / 김종일

 

봄비가
땅의 침묵을 깨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안에서부터 길을 낸다

 

사월은 묻지 않는다
늦음도 상처도
다만 한 번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이름을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꽃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살아 있는 건
결국 밀고 올라오니까

 

이제,  새 생명을 가지고
깨어나라
피어나라
솟아나라


겨울의 완고한 결빙을 깨뜨리는 것은 요란한 망치가 아니라,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는 봄비의 유순함이다. 김종일의 시 ‘사월의 문턱에서’는 계절의 변화라는 자연적 현상을 넘어, 고난의 터널을 지나온 존재들이 맞이하는 생명의 도약과 영적 각성을 정교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서경시(敍景詩)의 차원을 넘어,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본 ‘부활’과 ‘회복’의 역동성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수작이다.

 

내면의 길을 내는 신성한 불청객, 봄비

 

시의 도입부에서 '봄비'는 침묵하던 땅을 깨우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땅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고, 얼어붙고, 소망을 거세당한 인간 내면의 황무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의 두께를 탓하는 대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안에서부터 길을 낸다"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이는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부터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생명은 밖에서 억지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자극에 반응하여 안에서부터 스스로 길을 내며 터져 나오는 법이다. 시인은 그 생동하는 기운을 '길'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함으로써, 회복이 막연한 감상이 아닌 실체적인 방향성을 가진 운동임을 선언한다.

 

'있는 그대로'를 부르는 자비의 음성

 

이 시의 백미는 2연에 담긴 사월의 태도에 있다. "사월은 묻지 않는다 / 늦음도 상처도 / 다만 한 번 부른다 / 있는 그대로의 이름을." 이 대목은 독자의 심장을 강하게 타격한다. 우리는 늘 '늦었음'에 절망하고 '상처' 때문에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시인이 명명한 사월은 정죄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긍정하는 위로자이다.

 

조건 없는 수용과 부르심, 이는 복음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과거의 허물이나 현재의 초라함을 묻지 않고 오직 '이름'을 불러주는 그 사월의 음성 앞에서, 독자는 비로소 가면을 벗고 생명의 자리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사월은 계절을 넘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기회의 공간'이 된다. 

 

방향을 꺾지 않는 생명의 의지

 

마지막 단락으로 향하며 시의 호흡은 더욱 결연해진다. 차가운 공기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꽃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생의 중력'을 거스르는 힘, 그것이 바로 밀고 올라오는 생명력이다.

 

시인은 마지막에 세 개의 명령형 동사—깨어나라, 솟아나라, 피어나라—를 배치하며 독자의 영혼을 향해 사자후를 토한다. 이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일어난 부활의 생명을 입은 자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실존적 결단이다. 겨울의 잔재가 여전한 사월의 문턱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덤 속에 머물지 말고 빛의 광장으로 걸어 나오라고 명령한다.

 

우리 안의 사월을 위하여

 

김종일의 이 짧은 시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뜨거운 악수와 같다. 땅 밑에서 길을 내는 씨앗처럼,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음을 시인은 증언한다. 이 시를 덮으며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사월의 그 자비로운 부르심 앞에, 당신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깨어날 것인가.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작성 2026.03.28 19:15 수정 2026.03.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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