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의욕은 바닥을 쳤고,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였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상태. 암흑의 기운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나,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불만과 원망이 마음을 채웠다. 그땐 그것이 분명 불행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그건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라는 신호. 덕분에 수의사를 넘어 작가와 강연가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고, 지금은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당시엔 명백한 불행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불행인 줄 알았는데 행운이었다.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양자역학이 보여준 이 사실은 처음엔 과학자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입자인가 파동인가.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은데 실험 결과는 '둘 다'라고 말한다. 관찰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나쁜 일이기도 하고, 나쁜 일인 줄 알았는데 좋은 일이기도 한 게 인생이다. 관찰하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시선으로만 보면 '나쁜 일'이지만, 5년 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 모든 사건은 행운이자 동시에 불운이다.
거액의 복권 당첨 후 오히려 삶이 망가진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가족 관계가 무너지고, 일을 잃고, 인간관계가 황폐해진다. 행운인 줄 알았는데 삶 전체로 보면 불행의 씨앗이 되어버린 셈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사업 실패 후에 비로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 이혼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진짜 자신을 만났다. 건강을 잃고서야 몸을 돌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삶의 철학을 얻었다. 좋은 일이 나쁜 일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삶의 실제 모습이다.
불교 명상가 틱낫한은 말했다. "모든 현상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기쁨 속에 슬픔의 씨앗이 있고, 슬픔 속에 기쁨의 씨앗이 있다. 그것들이 서로를 만들어낸다.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성장도 없었다. 실패가 없었다면 통찰도 없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막상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힘든 일이 좋은 일의 씨앗이 될 거라는 걸 믿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틈이 있고, 그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않아도 된다. 반면, 기쁨 속에서는 이것이 끝날 거라는 걸 잊기 쉽다. 그래서 기쁠 때가 오히려 더 위태롭다. 모든 긴장을 다 놓아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옛날 중국 변방에 살던 노인 새옹이 기르던 말이 어느 날 달아났다. 이웃들은 위로했지만 노인은 담담했다. 얼마 후 그 말이 좋은 말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웃들이 축하했지만 노인은 역시 담담했다.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슬퍼하는 이웃들 앞에서 노인은 또 담담했다. 그리고 다리를 다친 덕분에 아들은 전쟁 징집을 피했다.
우리도 새옹처럼, 눈앞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를 조금씩 연습해보면 어떨까.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