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부르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표상 칼럼니스트 / 발행인 이은택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2025년도에 자살한 사람이 1만 4872명이라고 한다. 매일 40여명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2011년에 비해 13년 만에 최대 급증하였다 하니 가히 ‘자살 왕국’이라 할만하다.
최근에 유명한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정신적 육체적 장애는 물론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자식들로부터 또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젊은층의 사망원인중 1위를 차지해 충격을 주고 있다.
치열한 학업경쟁에서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 이유 없이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들이 우리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와 맞물려 죽음을 결단 한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더욱 악화된 소득 배분의 양극화로 빈곤층으로 몰락한 중산층은 물론 직장에서 조기퇴출 되어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의 절망이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죽음이 꿈 많은 인생의 가능성을 고갈케 하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 허무의 세계로 생각하기에 인간은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생존을 위한 감성적 현실적 조건이 저절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힘들게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에 있다.
사실 “생존이란 일종의 투쟁”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가난하고 허약한 것이어서 그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을 때 소외되고 절망하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기도 한다.
그간 우리사회는 무한한 욕망을 부추기는 흐름 속에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누리고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생동감과 역동적인 사회로 발전 할 수 있었든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물질만능주의의 광풍이 삶의 가치로 우리사회를 지배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귀결 되어 일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사회가 되었으며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더욱 가속화 되었다. 당연히 산다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사회적 조건임에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제도의 해체, 생명의 경시,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중압감등 사회, 문화적 변화가 한몫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절망은 소외계층을 확대시켜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오명과 함께 살고 싶지 않는 척박한 사회가 된 것도 분명해 보인다. 결국 인간이 현실적인 조건과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죽음을 부르는 우리사회에 내재한 생존 조건, 즉 부조리한 사회 환경에 대하여 폭 넓은 성찰적 사유와 치유를 위한 국가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자살이 죽음을 선택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자살은 더할 나위 없는 겁쟁이의 결과다”라고도 하였듯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조건은 삶을 제한 하지만, 조건이 있어서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 바와 같이 절망적이라는 조건의 밑바닥에서 희망이 잉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에 대하여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인 것을 각성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영생을 염원하며 자기실현을 위한 열정을 추구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며 희망인 것이며 생명에의 사랑이 가장 첫째가는 미덕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