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 등 비주거용 건축물의 준공 지연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수분양자들이 억대의 분양대금을 이미 납부해 놓은 상태에서 분양사업자는 "자재비 상승", "시공사 부도", "수분양자들의 잔금 미납"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입주예정일을 미루고, 정작 늦어진 데 대한 보상은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분양자가 "지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분양계약서에 "을(수분양자)이 잔금을 늦게 내면 지체 이자를 내야 한다"는 조항은 큰 글씨로 쓰여 있지만, "갑(분양사업자)이 입주일을 늦추면 수분양자에게 지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은 작게 숨어 있거나, 수분양자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6년 2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선고된 판결(2025가단52750)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갖습니다.

법무법인 휘명 박휘영 대표변호사
사건의 개요
피고는 평택에서 지식산업센터(또는 이에 준하는 집합건물)를 분양한 사업자입니다. 원고들은 2021년 5월부터 9월 사이에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2023년 7월 31일 기준으로 각자 1억 원에서 2억 5천만 원 상당의 분양대금을 납부한 22명의 수분양자들입니다.
계약서에는 입주예정일이 "2023년 7월 예정"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2023년 11월 29일에야 사용승인을 취득하였고, 그 사이 약 4개월의 입주 지연이 발생했습니다. 원고들은 계약서상 지체배상금 조항에 따라 지체상금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하였습니다. 별지 목록에 기재된 인용금액은 1인당 약 277만 원에서 1,240만 원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22명 전체로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지체상금이 인정된 것입니다.
판결의 핵심 논점과 법원의 판단
① 입주예정일은 2023년 7월 31일인가
피고 측은 "계약서에 '2023년 7월 예정'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날짜는 추후 개별통보한다고 하였으므로 입주예정일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지체 기간 자체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기한에 연(年)·월(月)만 기재되고 일(日)의 기재가 없는 때에는 통상 그 달의 말일에 기한이 도달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법리를 적용하여, 2023년 7월 31일이 입주예정일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계약서에 구체적 날짜를 적지 않은 분양사업자의 모호한 기재가 오히려 수분양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셈입니다.
② 입주예정일 '임의 변경' 조항의 효력
피고가 주로 내세운 논거는, 계약서 제1조 제8항에 "납부일정 및 입주예정일은 관계사정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고, 변경 시 별도 통보하기로 한다"는 조항이 있고, 실제로 피고가 입주예정일을 2023년 9월, 10월 31일, 11월로 수차례 변경 통보하였으므로 입주예정일이 2023년 11월 30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피고가 임의로 입주예정일을 늦추고 지체상금을 면하려 한 것입니다.
법원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입주예정일 변경은 "피고의 이행의무 이행 기일을 피고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 변경하는 것"으로서, "수분양자들에게 상당한 수인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인데 이를 강요하는 것이 사회적 상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계약서 제2조 제4항 제1호(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입주가 가능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의 취지를 원용하면서, 분양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입주예정일을 변경하여 고정된 수분양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도록 하는 것은 민법 제103조(반사회적 법률행위)에 위배되어 무효라고까지 선언하였습니다.
이 판시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채무불이행 법리를 넘어서, 사업자가 계약서에 임의변경 조항을 집어넣고 그것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관행 자체를 정면으로 무력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코로나19, BC노조 파업 등 불가항력 항변의 배척
피고는 "코로나19로 인한 원자재 수급 중단, 2022년경 건설노조 파업으로 인한 공기 연장, 평택 지역의 이상기후로 인한 강풍, 일부 수분양자들의 잔금 미납에 따른 공사비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으므로 준공 지연에 불가항력적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단 기준은 "그 사건의 발생이 그 사업자의 지배 범위 밖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그 사업자가 통상의 수단을 다하였더라도 이를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기존 대법원 법리(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5다59475 판결 등)를 적용한 것인데, 법원은 계약 체결 시점(2021년 5~9월)이 이미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2월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난 시점임을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즉, 분양사업자는 코로나19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2023년 7월을 입주예정일로 설정하였으므로, 그 사정이 불가항력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사업자가 시장 불확실성을 인지하고서도 낙관적 입주예정일을 제시하고 수분양자를 끌어 모은 뒤, 정작 지연이 발생하자 그 불확실성을 면책 사유로 뒤집어 사용하는 행태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④ 지체상금의 감액 주장 배척
피고는 지체상금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므로 법원이 감액할 수 있고(민법 제398조 제2항), 입주 지연 이후에도 상가 일부가 영업 중이며, 수분양자들이 계약 목적을 달성하였거나 실손해가 없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감액을 구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체상금 약정의 이율(은행 가계대출금리 + 연 3%)이 과도하다고 볼 수 없고, 계약서가 피고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것이며, 수분양자 측 귀책으로 입주가 늦어진 것이 아닌 이상 피고 측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감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판결이 주는 실무적 시사점
첫째, 지체상금 청구권은 반드시 행사하셔야 합니다.
준공 지연이 발생하고도 많은 수분양자들이 "입주를 받았으니 됐다"며 지체상금 청구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입주예정일로부터 실제 사용승인일까지의 기간에 대한 지체상금은 분명한 법적 권리입니다. 이 판결의 경우 4개월 지연으로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이상의 지체상금이 인정되었습니다. 지연 기간이 길수록, 납부 분양대금이 클수록 지체상금 규모는 커집니다.
둘째, "입주예정일 변경통보"를 받으셨더라도 지체상금 권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분양사업자들은 준공 지연이 예상되면 이메일이나 등기우편으로 "입주예정일이 변경되었습니다"라는 통보를 보냅니다. 수분양자들은 이 통보를 받으면 "아, 일정이 바뀌었나 보다"라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이 명확히 선언한 바와 같이, 분양사업자의 일방적 입주예정일 변경은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변경통보를 받으셨더라도 원래 입주예정일을 기준으로 지체상금을 청구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코로나19, 공사비 상승 등 시장 변수는 이제 면책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 판결이 선고된 2026년 2월 시점에는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이루어진 지도 한참이 지났습니다. 법원이 "코로나19 이후 상황을 알면서 입주예정일을 설정하였다"는 논리를 채택한 이상,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분양사업자의 불가항력 항변이 인정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넷째, 지체상금은 분양계약 해제와 별개의 독립적 청구권입니다.**
일부 수분양자들은 "나는 계약을 해제하고 분양대금을 돌려받으려 하는데, 지체상금도 청구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십니다. 답은 "그렇습니다"입니다. 계약 해제 후 분양대금 반환 청구와 지체상금 청구는 별개의 소송물이며,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청구가 가능합니다. 오히려 분양대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연 기간에 대한 지체상금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이 수분양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됩니다.
법·제도적 관점에서의 검토
이 판결은 개별 소송의 승패를 넘어 중요한 제도적 문제를 환기시킵니다.
현행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이하 '건축물분양법')은 분양사업자의 입주예정일 준수의무를 규율하는 별도 조항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주택의 경우 주택법·공동주택 분양가상한제 등을 통해 일정 수준의 보호가 이루어지지만, 비주거용 건축물인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에 대해서는 사실상 계약서 내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분양계약서 자체가 분양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부합계약(附合契約)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건에서처럼 "입주예정일은 관계사정에 따라 변경 가능하다"는 조항이 대부분의 비주거용 건축물 분양계약서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분양사업자들이 지체상금 부담을 미리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조항을 삽입하는 것입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그러한 조항을 민법 제103조 위반으로 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그러나 개별 소송에서의 사후적 구제보다는, 건축물분양법 시행령 제9조에 입주예정일의 임의 변경을 제한하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두고, 이를 위반한 경우 수분양자가 약정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의 입법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필자는 이미 건축물분양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 제출을 통해, 준공 지연 시 수분양자 보호를 위한 지체상금 조항 명시화, 입주예정일 변경 통보 요건 강화, 반복적 변경 시 계약해제권 자동 발생 등의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며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등 비주거용 건축물에 투자하신 수분양자들은 이미 준공 지연, 시세 하락, 공실 위험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계십니다. 여기에 더해 분양사업자가 지체상금조차 지급하지 않으려는 상황은 명백한 불공정입니다.
이번 평택지원 판결은 "입주가 늦어졌다면, 그 기간에 대한 대가를 청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원칙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분양사업자의 일방적 입주예정일 변경 통보나 불가항력 항변에 막연하게 수긍하고 계신 수분양자가 있으시다면, 지금 즉시 계약서의 지체배상금 조항을 확인하시고 전문가와 상담하실 것을 권합니다.
입주예정일로부터 실제 사용승인일 또는 입주 가능일까지의 기간, 그리고 납부하신 분양대금의 규모를 기초로 계산되는 지체상금은, 어쩌면 수분양자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받으셔야 했던 돈일 수 있습니다.
박휘영 변호사는 법무법인 휘명 대표변호사로, 분양계약 분쟁·집합건물 관리·재건축·재개발·토지수용보상 등을 전문으로 하며, 현재 관련 분야에서 100건 이상의 집단·다수 소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