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눈에 비친 꽃은 그저 식물인가 아니면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의 형상인가?”
5월의 초입 가로수와 산기슭을 하얗게 뒤덮는 이팝나무를 보면 누구나 마음이 넉넉해진다. 가느다란 꽃잎들이 뭉쳐 피어난 모습이 마치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하얀 쌀밥을 대접에 수북이 쌓아놓은 것 같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이씨(李氏) 성을 가진 왕의 밥’, 즉 ‘이밥’을 먹는 것처럼 귀한 꽃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이 나무는 배고픈 백성들에게는 생존의 희망을 점치는 지표였다. 식물의 하얀색은 빛을 100% 반사하는 물리적 현상이지만, 인간의 간절함과 만났을 때 그것은 굶주림을 달래주는 인문학적 식사가 된다.
밤에도 빛나는 등대
식물학적으로 이팝나무의 하얀 꽃은 매우 효율적인 생존 장치다. 하얀색은 가시광선의 모든 파장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스름한 저녁이나 밤에도 다른 유색 꽃들보다 눈에 훨씬 잘 띈다. 낮에는 벌들을, 밤에는 나방들을 유인하여 24시간 가루받이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또한 가느다란 꽃잎이 촘촘히 모여 있는 구조는 빛을 산란시켜 꽃 전체가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정원사는 여기서 배운다. 화려한 색을 입지 않아도 가진 빛을 온전히 반사하기만 해도 충분히 눈부실 수 있다는 사실을.
수분량에 반응하는 정직한 나무
이팝나무는 유독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많이 피면 그해는 비가 충분히 와서 풍년이 들고 꽃이 시원치 않으면 가뭄이 든다고 믿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이팝나무는 개화기에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어야 꽃을 풍성하게 피우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이 나무를 ‘기상청’ 삼아 한 해의 농사를 준비했다.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의 진실을 꽃의 밀도로 증명할 뿐이다.
투사(Projection)의 위로
식물치유사의 관점에서 이팝나무는 ‘결핍의 승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배고픈 이들이 꽃을 보며 쌀밥을 떠올린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 시각적 투사를 통해 잠시나마 허기를 잊고 희망을 품었다는 점은 놀라운 치유의 기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내 안에 부족한 무언가를 그 대상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꽃은 당신의 어떤 갈망을 비추고 있는가?”
5월의 눈꽃을 심는 마음
정원사에게 이팝나무는 정원에 ‘계절의 절정’을 선언하는 마침표와 같다. 초록이 짙어지기 전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이팝나무의 개화는 보는 이의 마음속 찌든 때를 씻어낸다. 비록 꽃이 지고 나면 바닥에 하얀 꽃잎이 눈처럼 쌓여 청소가 고되겠지만 그 찰나의 풍요를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것이 정원사의 업(業)이다. 쌀밥을 닮은 꽃 아래서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생명의 너그러움을 동시에 배운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법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에 굶주려 있다. 그것이 돈이든, 사랑이든 혹은 자아실현이든 각자의 ‘이밥’을 찾아 헤맨다. 삶이 퍽퍽하고 허기질 때 5월의 이팝나무 아래 서보길 권한다. 쌀밥처럼 소담하게 피어난 그 꽃들이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당신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곧 당신의 삶에도 이토록 풍성한 결실이 맺힐 것이라고. 이팝나무는 배고픈 역사를 지나온 우리 모두에게 대지가 차려주는 가장 따뜻하고 정갈한 한 끼 식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