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는 1835년 11월 25일,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848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로 이민갔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1889년 카네기철강회사(Carnegie Steel Company)를 창립하여 미국의 최고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만 했다.
젊은 시절, 청년 카네기는 세일즈맨으로 이집 저집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어느 날 한 노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청년 카네기는 그 집 거실 벽면 가운데 걸린 그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그림은 황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과 낡은 노가 썰물에 밀려 흰 백사장에 제멋대로 널려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 하단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The tide will surely come)”라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청년 카네기는 그 그림과 글귀에 크게 감명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카네기는 그 그림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그 노인댁을 찾아가 그 노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어르신, 세상을 떠나실 때는 저 그림을 꼭 저에게 주십시오” 진정성이 듬뿍 묻어나는 청년 카네기의 부탁을 잊지 않았던 노인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그 그림을 카네기에게 주었고, 카네기는 그 그림을 그의 사무실 벽에 평생동안 걸어 놓았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The tide will surely come)"는 짧은 글귀는 카네기의 일생을 좌우한 굳건한 신조가 되었다. “썰물이 가면 반드시 밀물이 온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이 간단한 사실을 카네기를 왜 평생동안 가슴에 담고 살았을까? 사람들은 너무도 평범한 상식은 크게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 “내일도 해가 뜬다”는 평범한 상식을 가슴 깊이 담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봄이 오면 싹트고 여름이 오면 무성하고 가을이 되면 낙엽지고 겨울이 오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는 평범한 상식도 가슴 깊이 담아놓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한 상식은 그 어떤 사실보다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요, 정의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무엇이 불변적 진리와 정의라면 매달리려 할 것이다. 종교인들인 하나같인 자신들이 믿고 받드는 신은 영원불변하고, 무소불위하고,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강변한다. 물론 그런 말들은 현실적으로, 과학적으로 확인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그 허무맹랑한 주장과 확신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종교인들의 허무맹랑한 주장과 확신보다 “내일도 반드시 해는 뜬다. 썰물이 가면 반드시 밀물이 온다. 맑은 날이 있으면 반드시 흐린 날이 있다.”는 평범한 상식은 종교인들의 허무맹랑한 주장보다 백배 천배 더 확실한 우주적 진리요, 과학적 진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옳고 너무 상식적인 그런 과학적 사실보다 너무 황당하고 너무 환상적인 종교적 참언(讖言)은 목숨 바쳐 믿고 숭앙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누구나 신비성이 전혀 없는 명명백백한 과학적 사실보다 신비성 투성이인 환상적 사실에 더 호기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너무 빛나는 금강석은 눈 시어 못 보듯 너무 옳은 진리는 눈 보시어 못 본다. 반면 너무너무 신비에 싸인 신화는 궁금증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너무도 자극하므로 기를 쓰고 찾아드는 경향이 있다. 만일 광화문 네거리에 “이 상자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만이 열 수 있는 신비의 상자이다. 그러므로 이 상자를 여는 자는 틀림없이 천복을 받으리라.”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자를 열어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열 수 없는 상자”라는 안내문, “틀림없이 천복을 받을 것이라는 안내문”이 호기심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장통에서 상자 속에 들어있는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뱀을 보여주겠다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약을 팔든 약장수는 그런 뱀이 들어 있다는 상자를 한 번도 열어 보인 적이 없었다. 그 상자를 여는 순간 호기심이 사라진 관중들이 모두 허탈하게 돌아설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종교인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신비의 현장을 보고 싶어? 궁금하면 연보(捐補) 돈”하면서 돈주머니를 돌린다. 물론 그 비밀의 현장은 영원히 개방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 “궁금해? 궁금하면 5백원”하며 손을 내밀든 코미디언의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 말이 유행했을까? 모두가 빨려들 것만 같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어떤 과학적 사실보다, 정의와 진리보다 호기심은 더 큰 힘이 있다. 도박도 마약도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대 성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정의와 진리보다 몇 백 배 더 강한 힘을 지닌 호기심을 자극하라.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