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류큐(琉球) 왕국에서 지도 제작은 단순한 지리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농지와 조세, 촌락과 행정을 한눈에 파악하기 위한 국가 통치 기술이었다.
특히 왕부가 전국적인 토지 측량 사업인 건륭대어지배(乾隆大御支配)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작한 『류큐국총회도(琉球国惣絵図)』는 류큐 왕국이 국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 했던 대표적 산물이었다.

건륭대어지배가 추진된 배경에는 식량과 세금 문제가 있었다. 18세기 전반 류큐 왕국은 인구 증가에 따라 더 많은 식량 생산이 필요했고, 왕부 역시 새롭게 개간된 농지와 조세원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이에 왕부는 오키나와 본섬은 물론 주변 이도(離島)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측량과 검지(検地)를 시행했다.
이 사업은 기존의 부정확한 국토 정보를 새롭게 정리하고, 왕부가 실제 토지 상황을 더 정밀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측량 결과를 바탕으로 제작된 지도가 『류큐국총회도』, 또는 ‘마기리 집성도(間切集成図)’이다. 이 지도는 단순히 섬의 윤곽을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하천, 도로, 촌락, 지방 행정 거점인 반쇼(番所), 주요 건조물의 명칭과 위치 관계까지 담은 실무형 행정 지도였다. 즉, 왕부가 국토와 주민, 농지와 지방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내치용 인프라였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마기리 집성도는 총 7장이다. 각각의 지도는 류큐 전역을 행정 구역별로 나누어 정밀하게 묘사했다. ‘하나레(離れ)’는 이헤야 마기리(伊平屋間切)를 담고, ‘구니가미(国頭)’는 본섬 최북단의 구니가미 마기리(国頭間切)를 보여준다.
‘나카가미 나카(中頭中)’는 자탄 마기리(北谷間切)와 고에쿠 마기리(越来間切)를, ‘나카가미 미나미(中頭南)’는 니시하라, 우라소에, 기노완, 나카구스쿠 마기리를 포함한다.
남부 지역도 세밀하게 구분되었다. ‘시마지리 히가시(島尻東)’는 다마구스쿠, 지넨, 사시키, 오자토 마기리를 담고, ‘시마지리 미나미(島尻南)’는 가네구스쿠, 다카미네, 마카베, 기얀, 마부니, 구시찬, 고치нда 마기리를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마치카타 및 시마지리 니시(町方・島尻西)’는 슈리(首里), 나하(那覇), 도마리(泊), 구메(久米)를 비롯해 하에바루, 마와시, 오로쿠, 도미구스쿠 마기리 등 왕국의 핵심 지역을 포괄한다.
이 지도들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도에 그려진 건조물의 건축과 철거 시기를 역추적한 결과 18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류큐국총회도』는 18세기 류큐의 행정 질서와 공간 구조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결국 『류큐국총회도』는 왕부가 국토를 단순히 소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측량하고 기록하고 관리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지도는 종이 위의 그림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였다. 농지를 파악하고, 세금을 걷고,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국토를 시각화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류큐국총회도(琉球国惣絵図)』는 건륭대어지배(乾隆大御支配)라는 전국적 토지 측량 사업을 바탕으로 탄생한 류큐 왕부의 실측 기반 행정 지도였다.
하천, 도로, 촌락, 반쇼, 주요 건조물까지 세밀하게 담은 이 지도는 농지와 조세, 지방 행정을 관리하기 위한 왕부의 통치 도구였다. 현존하는 7장의 마기리 집성도는 18세기 류큐의 공간 구조와 행정 질서를 보여주는 지리적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