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안료를 사용해도 나무에 따라 색이 다르게 발현되는 회화가 있다. 조선 개국공신 의령남씨 25세손인 남인우 화가의 2020년작 '고뇌하는 등단(담배 연기)'이다. 30년간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고 목재 패널 위에서만 작업해 온 작가의 이 작품이, AI 이미지 생성과 디지털 복제가 일상화된 시대에 '물리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한 회화'로 재조명되고 있다.
남인우 화가의 작업에서 나무는 단순한 바탕재가 아니다. 나무는 부위마다 수분 흡수율과 섬유질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안료를 올려도 색채가 다르게 발현된다. 흡수율이 높은 부분에서는 안료가 깊이 스며들어 저채도의 어두운 톤이 형성되고, 밀도가 높은 옹이 주변에서는 안료가 표면에 머물며 선명한 고채도 색상이 돌출된다. 작가는 이 물리적 특성을 창작의 핵심 원리로 활용한다.
'고뇌하는 등단'에서 이 원리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담배 연기의 표현이다. 작가는 연기라는 무정형의 대상을 붓으로 직접 묘사하지 않았다. 대신 핑크, 블루, 오렌지 등 고채도 안료를 나이테의 곡선을 따라 배치하고, 나무의 흡수율 차이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번짐과 난반사를 통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완성했다. 나무의 심층부로 스며든 저채도 톤은 고뇌의 깊이를, 표면에 거칠게 돌출된 원색은 창작의 열망을 대변하며, 이 둘의 대비가 작품 전체에 광학적 깊이감을 부여한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옹이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옹이는 나무가 상처를 치유하며 남긴 가장 단단한 흔적으로, 작가는 이를 고뇌를 관통하는 통찰의 눈으로 치환했다. 옹이의 높은 밀도 때문에 안료가 표면에 머물면서 주변과 확연히 다른 색감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작품의 시각적 구심점이 된다.
이 작품이 복제 불가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무의 나이테 간격, 옹이의 위치, 섬유질의 방향, 부위별 흡수율은 나무마다 모두 다르다. 사람의 지문처럼 같은 패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안료와 기법을 적용해도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디지털 프린팅이 정밀해지는 시대에, 이 같은 물리적 단일 원본성은 하이엔드 컬렉터에게 강력한 소장 근거가 된다.
미술 비평계에서는 이 작업 방식을 '지질학적 적층법'이라 부르며, 안젤름 키퍼가 납과 재로 역사의 폐허를 응시했다면 남인우는 나무와 원색으로 고뇌 너머의 희망을 표현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인우 화가는 "나무에 안료를 올리는 순간, 내가 의도한 색과 나무가 결정한 색이 만나 제3의 색채가 탄생한다"며 "이 그림은 내가 반, 나무가 반 완성한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같은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