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미뤄진 규제, 세 번째 지연 가능성
커피 한 잔에 담긴 윤리적 질문이 있다. 그 원두가 아마존 열대우림을 밀어낸 농장에서 왔는지, 아니면 기존 경작지에서 생산된 것인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유럽연합(EU)이 이 물음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려 한 것이 바로 EU 삼림벌채 규제(EUDR, EU Deforestation Regulation)다. 소,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콩, 목재 등 산림 파괴와 연관성이 높은 7개 품목군을 EU 시장에 유통하려면 해당 제품이 삼림벌채와 무관함을 기업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2026년 5월 현재, 이 야심 찬 규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부 압력과 내부 기술 결함이라는 이중 딜레마 앞에서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 적용 시한(2026년 12월 30일)이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EU 집행위원회는 간소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고 추가 1년 연기 제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규제의 잇따른 지연과 간소화 논의는 단순한 행정 절차 조정이 아니다. 무역 이익 앞에서 환경 원칙이 얼마나 쉽게 후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다.
규제가 무뎌질수록 피해는 열대림과 그 안에 사는 생물 다양성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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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준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규제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공급망 전략 수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역설에 빠진다. EUDR은 원래 2024년 12월부터 발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업계의 높은 준수 비용 부담과 공급망 추적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한 차례 연기가 결정되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EU 측에 2년간의 이행 연기를 공식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적용 일정은 대기업 2026년 12월 30일, 중소기업 2027년 6월 30일로 조정되었다.
그런데 2025년 10월 2일 국제 법률회사 래섬앤드왓킨스(Latham & Watkins LLP)가 공개한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IT 정보 시스템이 예상 거래량을 처리할 수 없다는 기술적 우려를 이유로 추가 1년 연기 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규제의 뼈대는 세웠지만 신경계에 해당하는 디지털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셈이다.
규제 이행의 핵심 기반이 흔들린다는 사실은 단순히 일정 문제가 아니라 규제 설계 자체의 허점을 드러낸다. 외부 압박은 더욱 구체적이고 집요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에 대한 EUDR 적용 제외를 EU 측에 공개적으로 압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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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구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머물지 않았다. 2025년 8월 체결된 '미-EU 상호적이고 균형 잡힌 무역에 관한 협정 프레임워크'에는 EU가 미국 생산자 및 수출업자의 우려를 해소해 EUDR이 미-EU 무역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명시적으로 포함되었다. 무역 협정문 안에 특정 환경 규제의 완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EU 집행위원회가 2026년 4월 30일을 전후해 포브스(Forbes)가 보도한 대로 EUDR 이행 간소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실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환경 단체와 연구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EUDR이 약화되거나 지연될수록, 삼림벌채를 억제해야 할 공급망 내 유인이 약해진다. 세계자원연구소(WRI)를 포함한 다수 환경 기관이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대로, 전 세계 삼림 손실의 상당 부분은 농업 확장과 직결되어 있다.
EUDR이 겨냥한 7개 품목군은 바로 그 농업 확장의 핵심 동인이다. 규제가 후퇴하면 EU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산림 보호 기준을 지킬 경제적 동기 자체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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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반복적인 후퇴는 EU가 표방해온 '그린딜(Green Deal)' 전략 전반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누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행정 지연 문제로 볼 수 없다.
미국 무역 압박이 환경 규제 판도를 바꾼다
물론 반론도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규제의 속도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강행하면 기업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 뿐, 실질적인 삼림 보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IT 시스템이 대규모 거래량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규제 이행 자체가 형식적인 서류 제출로 전락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준수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 반론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EUDR을 처음 입법화할 때부터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었다. 규제 발효까지 수년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IT 인프라를 완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행 의지의 문제이지 기술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역 상대국의 압박에 규제 내용이 흔들린다면, 이는 EU가 스스로 설정한 환경 기준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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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 기업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복잡한 셈법을 요구한다. EU는 한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 중 하나로, 목재·가구·식품 등 EUDR 관련 품목을 EU 시장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에 상당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왔다. 규제 간소화나 추가 지연이 확정된다면 단기적으로 준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규제가 언제, 어떤 형태로 최종 확정될지 불분명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기업들은 전략적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강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간소화를 전제로 공급망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 자체가 기업에게 비용이 된다.
EUDR의 잇따른 지연과 간소화는 결국 환경 정책이 무역 이익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U가 스스로 세운 규칙을 외부 압박에 따라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면, 앞으로 어떤 환경 규제도 무역 파트너의 압력 앞에 흔들릴 수 있다는 선례가 된다. 한국 기업들은 단기 부담 완화에 안도하기보다, 장기적으로 강화될 글로벌 공급망 투명성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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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무뎌진다고 해서 삼림이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모두가 나눠 지게 된다. 아침 커피 한 잔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군가의 숲을 대가로 치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Q. EU 삼림벌채 규제(EUDR)는 한국 기업에도 적용되는가. A.
EUDR은 EU 시장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통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따라서 목재, 가구, 식품 등 규제 대상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해당 제품이 삼림벌채와 무관함을 입증하는 서류와 실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
한국 수출 기업, 불확실성 속 전략 재검토 불가피
Q. EUDR의 최종 발효 일정은 언제인가. A.
2026년 5월 현재 기준으로 대기업은 2026년 12월 30일, 중소기업은 2027년 6월 30일이 준수 기한이다. 다만 EU 집행위원회가 추가 지연 방안을 검토해온 만큼 최종 일정은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Q.
EUDR 규제 대상 품목은 무엇인가. A.
소,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콩, 목재 등 7개 품목군이 대상이다. 이 품목들로 만들어진 가공품과 파생 상품도 규제 범위에 포함되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추적 의무가 부과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