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의례와 향로
高麗時代 儀禮와 香爐
Rituals and incense burners of the Goryeo Dynasty
“부처님의 향기, 고려를 채우다 !”
- 불교국가의 중심에서 피어오른 향의 세계
하늘로 오르는 향, 부처와 인간을 잇다
절은 향(香)과 친숙하다. 어느 법당에서든 향을 태워 만든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후각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매력이 크다.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하늘거리며 올라가는 파란 연기는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실제로 고대 인도의 불자들은 이러한 향연(香煙)을 부처님과 자신을 연결하는 사자(使者)로 인식했다. 향로(香爐)에 담으면 이 퍼포먼스의 화려함은 극대화된다.
향로는 으레 불에 타지 않는 금속으로 제작한다. 황금에다 조각과 장식을 정교하게 입힌 것들은 예로부터 임금과 왕실의 물건이었다. 국보인 백제의 금동향로가 대표적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뚜껑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불에 타지 않는 그릇, 권력을 담다
동국대학교출판부에서 출간한 『고려시대 의례와 향로』는 이러한 향로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향로의 재질과 종류부터 역사와 미학적 가치까지 아울렀다.
향로는 출발부터 귀족적이다. 오래된 권력 상징물인 중국의 고동기(古銅器) ‘정(鼎)’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왔다. 서기 4세기 중반에 조성된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 ‘안악 3호분’의 벽화에는 당시 사용했던 향로가 그려져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쓰이던 사치품임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물론 본격적인 사용은 불교 전래 이후다. 디자인도 다채로워진다. 초기엔 한쪽에 두고 쓰는 거(居)향로와 긴 손잡이가 달린 병(甁)향로가 주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외래적 영향을 받은 다족(多足)향로가 나타난다. 불교를 지엄한 국교로 삼았던 고려시대에 와서 향로도 최전성기를 누렸다. 모든 법회의 시작은 향을 피우는 일이었다.
고려 제기에서 불교의례의 중심으로
고려의 왕실의례는 곧 불교의례였다. 부처님의 육신을 기화(氣化)한 것이 향이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향연을 통해 왕은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고 개인들은 복을 빌고 서원(誓願)을 세웠다. 향을 담는 향로가 갈수록 호화롭고 장엄하게 치장된 까닭이기도 하다. 거향로, 병향로와 함께 다족향로를 개량한 삼족(三足)향로가 유행했다. 불교 교리의 근간인 계정혜 삼학(三學)을 은유하는 디자인이다. 삼족향로를 지나 11세기 후반에는 청동 향완(香垸)이 등장한다. 향완은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형태로 당대에 가장 많이 쓰이던 향로다. 책에는 불교적 이념으로 운영되던 국가에 온기를 불어넣던 향로의 다양한 모습과 패턴이 수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향로는 불교법회와 왕실의례라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 사용됐다. 더구나 통일신라의 전통 계승과 주변국 향로의 영향 속에서 가장 다양하고 독특한 향로를 사용한 시대였다. 특히 불교 향로인 청동은입사향완은 은실로 범자와 연화문 등 불교적인 문양을 표현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의 불교 향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고(至高)의 수작이다. 가장 불교적인 향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돋보인다. 더불어 고려시대의 향완은 조선시대로 계승되어 500여 년간 실제로 쓰인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향로라는 점에서 그 종교적 기술적 예술적 우수성이 도드라진다.
향로 속 또 하나의 세계, 향(香)
향로와 단짝인 향에 대한 설명도 풍성하다. 고려시대 불교의례와 왕실의례에 사용했던 향은 향로와 마찬가지로 최고급품이었다. 침향과 단향을 비롯해 사향을 썼는데, 의례의 성격에 맞게 향도 달리했다. 중국 송나라에서 수입하기도 했고 우리 국토의 나무에서 자생하는 향을 채집하기도 했다. 꿀로 반죽해 빚은 환향(丸香) 또는 일정한 틀에 넣고 찍은 전향(塼香)이 특히 유행했다. 전통과 창의가 부지런히 혼합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저자인 이용진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동국대 박물관장)는 향과 향로의 국내 최고 전문가다. 자료가 대단히 풍부하고 설명이 조밀해서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향과 향로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