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서울 교육 현장에 두 가지 서로 다른 결의 정책이 동시에 투입된다. 서·논술형 평가를 인공지능이 채점하는 시스템이 중·고등학교 120곳으로 확대되는 한편, 종이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교육이 전면 강화된다.
첨단 기술 도입과 아날로그식 읽기 교육의 병행은 지식 암기 중심의 교육이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다. 교육의 초점은 기계가 내놓은 답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간 고유의 문해력 강화로 이동하고 있다.

인공지능 평가 도입과 인문학 교육의 병행
서울시교육청은 2026학년도 중등 학생평가 내실화 계획을 통해 서·논술형 평가 실천학교를 120곳으로 확대한다. 교사의 채점을 돕는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인 채움AI(학생들의 서술형 답안을 분석하고 평가를 지원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를 고도화해 2027년부터 전체 학교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독서·토론·인문학 교육 2030 계획을 가동한다. 학생들의 과도한 디지털 기기 의존과 문해력 저하에 대응하기 위해 초·중학교를 중심으로 독서 중점학교를 운영한다. 구체적으로 교과 과정에서 성찰, 책임, 소통 등 핵심 개념을 추출해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개념기반탐구독서 수업을 현장에 적용한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는 아침 10분 집중 독서, 우리 학교 한 책 읽기, 학교도서관 연계 독서 활동 등을 확대한다. 고등학교는 인문학 실천학교를 지정하여 비판적 사고력 함양에 집중한다. 평가 방식의 인공지능화와 학습 방식의 고전적 독서 집중 현상이 교실 단위에서 함께 전개되고 있다.
지식 축적의 종말과 질문하는 역량의 부상
이러한 정책이 설계된 배경에는 정해진 객관식 정답을 찾는 교육 방식의 효용성 하락이 자리한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지식을 검색하고 요약하는 기능을 빠르게 수행하면서, 단순 지식을 암기하여 평가받는 방식은 사회적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지식 이해 중심에서 역량 기반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이 정답을 얼마나 아는가를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 배운 지식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변경한 것이다.
인공지능 교육을 확대할수록 역설적으로 독서와 인문학이 강조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기계가 생성한 정보를 맹신하지 않고 정보 이면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철학적 사유와 비판적 문해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첨단 기술을 통제하고 올바른 프롬프트(질문)를 입력하는 동력은 결국 인간의 깊이 있는 사고력에서 나온다. 기술 교육의 기반으로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독서를 채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정책 수순이다.
서술 중심의 교실과 평가 기준의 재편
현장 교실의 일차적 파급 효과는 평가 기준의 이동이다. 지식의 양을 측정하던 지필고사 대신,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묻는 서술과 질문의 질이 중요해진다.
학생들은 파편화된 지식을 고르는 대신 자신의 논리를 글로 구조화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채움AI의 도입은 교사의 물리적 채점 부담을 덜어주어, 평가 과정의 행정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학교 공간 역시 도서관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편되어, 능동적 정보 탐색과 다중문해력을 기르는 물리적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기술적 효율성이 가져올 부작용도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채점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학생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이 특정 모범 답안의 틀에 갇혀 규격화될 위험성이 제기된다.
인공지능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의 편향성을 어떻게 통제하고 서술형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느냐가 제도의 신뢰성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산업과 사회 전반에서 인공지능 결과물을 맹신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가운데, 교육 현장의 사고방식이 기계적 잣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는 해소해야 할 과제다.
개별화된 피드백과 교사 역할의 재정립
평가와 채점 영역에 인공지능이 개입하더라도, 공교육의 핵심 경쟁력은 교사의 개별화된 피드백에 기반해야 한다. 기계가 학생의 글을 1차로 분석하더라도, 최종적인 평가와 지도는 학생의 사고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한 교사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정답을 채점하는 보조 도구일 뿐, 창의적인 오답이 지닌 논리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교사 고유의 영역이다. 교육 당국이 학교도서관 자율 운영을 보장하고 공간 혁신을 지원하는 이유 역시, 교사와 학생이 교감하며 사유를 확장하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평가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보조를 받되, 교육의 본질은 철저히 인간의 주도적 사고력 확장에 집중해야 한다. 첨단 기술과 인문학적 사고가 공존하는 교실에서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주도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조력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이라는 하향식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학교 현장에서 실증된 교육 사례를 바탕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상향식 정책 실행 모델이 정착되어야 한다.
[전문 용어 사전]
▪️채움AI: 학생들의 서·논술형 답안을 분석하고 교사의 평가와 채점 업무를 보조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인공지능 지원 시스템이다.
▪️개념기반탐구독서: 교과 과정에서 도출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도서를 읽고 스스로 질문하며 탐구하는 주도적 독서 교육 방식이다.
▪️역량 기반 교육: 단순한 지식의 암기나 이해 수준을 넘어서, 학생이 실제 삶의 문제 해결에 지식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는 교육 패러다임이다.
▪️다중문해력: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시각자료, 디지털 언어, 텍스트 등을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적 정보 처리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