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천재성으로 소비하고, 또 누군가는 이상 행동으로 단정한다. 그러나 2026년 5월 13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본능대학 제105회 강연은 그 익숙한 시선을 정면으로 흔들었다.
이날 강연의 제목은 영화 한 편에서 출발했다.
‘톰 크루즈가 온다! 자폐, ADHD, 아스퍼거’
하지만 강연은 단순한 영화 해설이나 심리 특강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강연장 스크린에 영화 ‘레인맨’ 장면이 비춰질 때마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점점 진지해졌다. 영화 속 인물을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는 시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폐를 ‘이상 행동’이 아닌 정보 처리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한 본능대학 대표 김태흥은 영화 속 주인공 레이먼드의 행동을 사례로 들며 자폐 스펙트럼을 설명했다.
반복 행동.
예측 가능한 환경에 대한 집착.
낯선 변화에서 오는 불안.
타인과의 거리감.
그러나 그는 이를 비정상이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인간의 뇌는 원래 모두 다르게 작동한다”며 자폐를 병리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의 한계를 짚었다. 특히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이유로 자폐인을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오해도 언급했다.

김태흥 본능대학 대표가 영화 ‘레인맨’을 사례로 자폐스펙트럼과 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강연에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객석은 한동안 조용해졌다.
설명을 듣고 보니 ‘레인맨’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약 70분간 이어진 강연 이후에는 영화 ‘레인맨’ 감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참석자들의 시선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본능대학 105회 강연에서 참석자들이 영화 ‘레인맨’을 기반으로 한 자폐 스펙트럼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예전에는 천재성과 특이함 중심으로 보였던 장면들이 이날만큼은 외로움과 불안, 관계의 어려움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레이먼드가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면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세상과 충돌하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한 참석자는 강연 후 “예전에는 천재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이해받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설명을 듣고 영화를 보니까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였다”며 깊은 몰입감을 전했다.
ADHD도 단순한 산만함이 아니었다
이날 강연에서는 ADHD에 대한 설명도 함께 이어졌다.
김 대표는 ADHD를 단순히 집중력이 부족한 상태로만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마다 주의를 조절하는 방식과 감각 반응 체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며, 뇌 기능의 다양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연은 의학 용어를 나열하는 방식보다 실제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참석자들 역시 전문 지식을 듣는 분위기보다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중요한 건 왜 저럴까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할까다”
이날 강연의 마지막은 비교적 조용했다.
김태흥 대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왜 저럴까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할까입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강연장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강연 종료 후에도 많은 참석자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가족 이야기를 꺼냈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기억을 이야기했다. 영화 한 편이 끝났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질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철학과 인간 이해를 연결해 온 김태흥 대표
이번 강연을 진행한 김태흥 대표는 본능대학과 본능극단을 운영하며 철학·심리·인문학을 연극과 강연으로 풀어내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는 7월 공연 예정인 창작극 ‘죽는게 억울하니’를 배우들과 함께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며 연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앞서 대학로에서 2년 연속 관객 호평 속에 공연된 창작연극 ‘사는게 억울하니?’의 연출과 각본을 맡아 주목받았다. 해당 작품은 철학자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무대 위로 불러내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이번 본능대학 강연 역시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번 본능대학 105회 강연은 영화 ‘레인맨’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과 ADHD를 단순한 병리나 이상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정보 처리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이끈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은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고, 인간 이해에 대한 시선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얻었다.
이룸센터에서 열린 이날 강연은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니었다. 자폐와 ADHD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진 시간이었다. 영화 ‘레인맨’은 이날 강연장에서 장애 영화가 아니라 이해의 영화로 다시 읽히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