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열흘을 기다렸다. 전쟁을 끝내자는 제안서 한 장에 대한 테헤란의 답을 기다린 열흘이었다. 그리고 일요일, 마침내 도착한 이란의 회신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단어로 일축했다. "쓰레기." 그는 이 역제안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고, 어리석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협상장의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워싱턴에서 서울까지 들리는 듯하다.
흥미로운 건, 항복을 종용받은 쪽이 오히려 승자의 언어로 문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테헤란은 3가지를 요구했다. ▲전쟁의 완전한 종식,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 주권의 공식 인정, ▲모든 제재의 전면 해제이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10주간의 전쟁, 그 포화 속에서 최고지도자와 고위 사령관들을 잃은 나라가 내놓은 요구라기에는 그 어조가 사뭇 당당하다.
이 어긋남의 뿌리는 '인식의 충돌'에 있다. 런던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 사남 바킬은 바로 그 표현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왜 스스로 구하기 위해 협상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워싱턴의 시계와 테헤란의 시계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한쪽은 자신이 이미 이겼다고 믿고, 다른 쪽은 상대가 곧 무릎 꿇을 것이라 믿는다. 한 안보 분석가의 진단을 빌리면, 이란 지도부의 답변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고 승리했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를 승리로 셈하는 셈법이다.
협상의 교착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빠르고 쉬운" 승리를 원한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최소 10년간 공식 중단하고, 현재 보유한 약 440킬로그램의 고농축 우라늄을 넘기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출발점이다. 반면 테헤란은 정반대의 순서를 제시한다. 먼저 모든 전선에서 전쟁을 끝내고, 제재를 풀고, 미국의 해상 봉쇄를 거두라는 것이다. 핵 문제는 그다음 단계로 미루자고 한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스마일 바가이는 자국의 요구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것이라 말했고, 이란 군 대변인은 한술 더 떠 이란의 누구도 트럼프를 기쁘게 하려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왜 이란은 초반에 양보하지 않는가
바킬의 분석은 날카롭다. "그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란이 트럼프에게 이미 개인적으로 쓴맛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헤란은 미국이 전쟁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보장을 원한다. 그 보증인으로 이란이 지목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이란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를 먼저 중국으로 보냈다. 주중 이란 대사는 "어떤 합의든 강대국의 보증이 수반되어야 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논의되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양자 협상의 식탁에 제3의 의자를 끌어다 놓으려는 포석이다.
그사이 바다 위에서는 휴전이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4월 8일 휴전 협정이 발효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미국과 이란의 함정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여러 차례 포화를 주고받았다. 이란은 수 주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요일 "휴전이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국제 유가는 그 불안을 그대로 빨아들여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한 척이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해협을 통과했지만, 그 상징적 장면조차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나는 이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지켜보며, '승리'라는 단어의 무게를 가만히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벽한 승리"를 말하고, 테헤란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두 개의 승리가 한 바다 위에서 충돌하는 동안, 정작 그 바다를 건너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호르무즈를 지나지 못한 유조선의 선원들, 미사일 경보에 잠을 설치는 도시의 아이들, 제재의 벽 안에서 약값을 걱정하는 노인들. 정치 지도자들의 협상 문서에는 그들의 이름이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를 무릎 꿇리는 데 있지 않다. 칼을 거두고, 마주 앉은 자의 두려움을 헤아리는 데 있다. 열흘을 기다린 그 답장이 '쓰레기'라는 한 단어로 구겨질 때, 가장 깊이 멍드는 것은 두 정상의 자존심이 아니라, 그 협상의 결과를 묵묵히 살아내야 할 이름 없는 영혼들이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그 영혼들을 향해 끈질긴 응답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