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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의미하는 것

투키디데스의 함정: 16건 중 12건이 전쟁으로 끝났다

2,500년 전 추방당한 장군이 인류에게 남긴 무서운 경고

두려움·이익·명예, 강대국을 벼랑으로 떠미는 3가지 힘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기원전 5세기,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한 사내가 폐허가 된 자기 조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테네의 장군이었으나 전투에서 패해 추방당한 사람, 투키디데스이다. 그는 칼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펜을 들었다. 그리고 27년에 걸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을 기록하며 인류에게 한 문장을 남겼다.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아테네의 부상, 그리고 그것이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었다." 2,500년이 흐른 오늘, 이 문장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국제 정세의 가장 깊은 균열을 가리키고 있다.

 

이 오래된 통찰에 '함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현대의 언어로 되살린 사람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이다. 그는 2010년대 초부터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을 다듬었고,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으로 이를 세계적 화두로 만들었다. 

 

그가 정의한 함정의 핵심은 명료하다. 떠오르는 신흥 강국이 기존 패권국의 자리를 위협할 때, 그 구조적 긴장은 무력 충돌을 '예외'가 아니라 '법칙'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지목한 3가지 동력이다. 두려움, 이익, 그리고 명예. 부상하는 쪽은 더 큰 존중과 정당한 몫을 원하고, 기존의 쪽은 쇠퇴의 불안과 대체 당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아도, 이 보이지 않는 심리의 압력이 두 나라를 벼랑 끝으로 떠민다.

 

앨리슨 교수는 추측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하버드 벨퍼센터 연구팀과 함께 지난 500년의 역사를 샅샅이 뒤져, 신흥 강국이 패권국에 도전한 사례 16건을 추출했다. 결과는 서늘했다. 그 가운데 12건이 전면전으로 끝났다. 16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선 프랑스, 20세기 초 대영제국에 도전한 독일, 태평양의 패권을 두고 충돌한 두 해양 강국. 역사의 책장은 깨진 약속과 불탄 도시의 기록으로 가득했다. 부상의 속도가 빠를수록, 그리고 그 부상을 지켜보는 쪽의 두려움이 클수록, 화약고는 더 낮은 온도에서 터졌다.

 

그러나 내가 정작 붙들고 싶은 건 비극으로 끝난 12건이 아니라, 전쟁을 피해 간 4건이다. 앨리슨 교수 스스로 "이 책의 목적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그 4건 가운데 무려 3건이 20세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 세기 넘게 세계를 호령하던 해양 제국이 신흥 강국의 부상을 전쟁이 아닌 수용으로 받아들인 일, 두 초강대국이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다가 끝내 직접 충돌을 피한 냉전의 긴 줄다리기,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 다시 떠오른 한 강국이 군사적 재무장 대신 경제적 성장이라는 평화로운 길을 택한 사례. 함정은 분명 강력하지만, 결코 운명은 아니라는 증거들이다. 다만 앨리슨은 한 가지를 분명히 못 박는다. 그 4건의 예외에서, 양측은 모두 '크고 고통스러운 조정'을 감내해야 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진 적이 없었다.

 

흥미로운 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화점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 깊은 긴장 속에서도 한동안 직접 충돌을 피하고 있었다. 정작 불씨가 된 것은 제3자였다. 스파르타의 동맹국 코린토스가 아테네의 보호 아래 있던 케르키라를 공격하면서, 두 거인은 원치 않던 전쟁으로 끌려 들어갔다. 구조적 긴장이 팽팽할 때, 작은 동맹국 하나의 불장난이 거대한 화재로 번진다는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오싹할 만큼 유효하다. 강대국의 전쟁은 종종 강대국이 시작하지 않는다. 그 주변에서, 누군가의 작은 오판과 충성 경쟁이 도화선을 당긴다. 동맹이라는 것은 방패인 동시에, 자칫하면 자신을 끌어들이는 밧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개념에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16건의 사례 선택 기준이 자의적이고, '부상'과 '패권'의 정의가 모호하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한다. 옳은 지적이다. 역사는 언제나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되기를 거부한다. 국내 정치의 동요, 지도자 개인의 오판, 경제적 이해의 충돌, 우연한 사고까지, 전쟁의 원인은 늘 복합적이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 까닭은 그것이 지도자의 '의도'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를 보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를 가진 두 지도자가 마주 앉아 미소를 짓는 그 순간에도, 구조의 압력은 식탁 밑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함정을 피하는 첫걸음이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이번에 세계 빅2(Big Two) 정상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실로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했다. 바로 대만을 가리킨 것이었다.

 

오늘의 국제 정세를 둘러보면, 이 함정의 자력선(磁力線)은 어느 한 곳에만 흐르지 않는다. 자원과 에너지 회랑을 둘러싼 경쟁, 첨단 기술과 공급망의 주도권 다툼, 해상 요충지의 통제권을 놓고 벌어지는 신경전. 떠오르는 힘과 그것을 경계하는 힘이 마주치는 모든 자리에 이 오래된 긴장이 잠복해 있다. 중요한 건, 함정의 존재를 부정하는 낙관도,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비관도 모두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낙관은 방심을 부르고, 비관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진정한 지혜는 그 사이에 있다. 위험을 정직하게 직시하되, 그것을 피할 길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균형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추방당한 한 사내가 폐허 앞에서 펜을 들던 그 새벽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책이 "영원한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가 남기고 싶었던 건 절망의 예언이 아니었다.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후대를 향한 간절한 당부였다. 역사가 같은 장면을 이토록 끈질기게 반복해 보여주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비관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라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운명도, 마주 앉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두려움에 떠밀려 갈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조정을 감내하고서라도 4건의 예외가 될 것인가. 함정은 땅에 파여 있으나, 그 위를 건너는 다리를 놓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손이다. 그리고 그 손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작성 2026.05.15 02:44 수정 2026.05.15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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