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7문
Q. What is repentance unto life? A. Repentance unto life is a saving grace, whereby a sinner, out of a true sense of his sin, and apprehension of the mercy of God in Christ, doth, with grief and hatred of his sin, turn from it unto God, with full purpose of, and endeavour after, new obedience.
문.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참으로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 자기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그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굳은 결심과 노력으로 새로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ㆍ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ㆍ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7-38)
ㆍ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 2:12)
ㆍ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렘 3:22)
ㆍ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렘 31:18-19)
ㆍ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 36:31)
ㆍ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ㆍ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우리는 흔히 '회개'라는 단어를 들을 때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책하는 감정적 과잉의 상태를 떠올린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7문이 정의하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나 일시적인 후회를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삶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거대한 실존적 전환점이다.
현대인들은 어제의 잘못을 자책하며 밤을 지새우지만, 정작 내일의 궤도를 수정하는 데는 무력하다. 소요리문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왜 자책의 늪에 빠지지 말고 '생명'으로 이어지는 회개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인간은 자신의 결함을 직면하기보다 합리화하거나 타인에게 투사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정직한 통찰을 요구한다. 히브리어로 회개를 뜻하는 '테슈바(תְּשׁוּבָה)'는 단순히 미안하다는 고백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 즉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회개의 서막이다. 이는 마음이 찔리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 아픔은 수술대의 메스처럼 치유를 위한 전주곡이 된다.
하지만 죄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요리문답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기독교 회개와 도덕적 반성의 결정적 차이다. 자비에 대한 신뢰가 없는 회개는 가룟 유다식의 자학적 파멸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울을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목격할 때, 죄인은 비로소 안전하게 자신의 추함을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회개의 감정적 측면인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여기서의 슬픔은 단순히 처벌이 두려워서 느끼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실망시켰다는 것에 대한 인격적인 애통이다. 헬라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마음을 바꿈' 혹은 '생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죄의 유혹이, 이제는 나를 파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끔찍한 독약으로 인식되는 가치관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고집하곤 하지만, 회개는 과감하게 그 과거의 자본을 손절하고 새로운 생명의 가치에 투자하는 결단이다.
회개의 완성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새로이 순종하는 것'에 있다. 전환(Turning) 없는 후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회심은 비전의 수정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리소스의 재배치와 실행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굳은 결심과 노력"이라는 표현은 회개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동시에 인간의 인격적인 반응과 의지적 참여를 요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성실성(Integrity)'의 회복이다. 말과 행동, 신념과 삶이 일치하기 시작할 때 회개는 비로소 '생명'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이는 어제의 실수를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쌓고, 어떤 이는 수치심에 함몰되어 스스로를 학대한다. 그러나 소요리문답 87문은 우리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라는 끝없는 바다를 향해 인생의 키를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자비를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의 낡은 관성은 멈추고 거룩이라는 새로운 창조적 질서가 시작될 것이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결코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진짜 살아있게 만든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