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이제 시대를 대표하는 심리 키워드가 됐다. 서점가에는 자존감을 주제로 한 도서들이 넘쳐나고, 유튜브와 SNS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콘텐츠가 매일 업로드된다. 인스타그램에는 자기애를 의미하는 해시태그 게시물이 끊임없이 쌓이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시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간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청년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20~30 세대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청소년 자해와 사회적 고립 문제도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자존감을 이야기하는 시대인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현재 사회가 자존감보다 ‘타존감’ 중심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심리학에서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기수용과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핵심은 외부 평가가 아니라 내면의 확신에 있다.
하지만 SNS 환경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좋아요 수와 팔로워 증가, 댓글 반응은 모두 타인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보여주기 위해 연출하고, 타인의 반응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문제는 이 만족감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은 관심에 만족하던 기준은 점점 더 큰 반응을 요구하게 되고, 관심의 강도 역시 끊임없이 높아진다.
채미화센터장은 “SNS 속 자존감은 실제 자기 존중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는 감정 소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며 “좋아요와 팔로워 숫자가 많아질수록 만족감도 커질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비교와 결핍이 함께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플랫폼 알고리즘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강화한다. 이용자들은 다음 알림과 다음 반응을 기다리며 반복적으로 짧은 자극에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이 플랫폼 시스템에 종속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존감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으로 이동하는 순간 불안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비교 문화 또한 심리적 피로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가까운 친구나 이웃 정도가 비교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전 세계 상위권 삶이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된다. 여행과 소비, 외모, 인간관계까지 편집된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자신의 현실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채미화센터장은 “진짜 자존감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에서 형성되지 않는다”며 “실패 이후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자아탄력성과 오프라인 관계 속 안정감이 마음 건강의 핵심 요소가 된다”고 강조한다.
노년기 우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실제로 우울을 덜 경험하는 사람들은 화려한 인정 욕구보다 안정된 내적 기준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확신과 실패 이후 다시 회복하는 힘,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자존감 회복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칭찬이나 자기 확신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자존감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실패 경험 이후 다시 일어서는 회복 경험과 오프라인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보여주기 위한 삶과 실제 삶을 구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NS에 올리지 않은 하루를 불안해하지 않는 능력, 타인의 반응 없이도 자신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감각이 진짜 자존감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채미화센터장은 “자존감은 타인의 박수로 채워지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며 “비교를 줄이고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회복하는 것이 결국 건강한 마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