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탄소 거래제의 진화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거래제(ETS)가 2026년 5월 기준으로 새로운 개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6년 5월 11일 탄소 시장 감시기구 카본 마켓 워치(Carbon Market Watch)가 ETS 개정 우선순위 논의를 공식화함에 따라,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집약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도 직접적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ETS는 지난 20년간 전력, 산업, 항공, 해양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데 기여한 EU 기후 정책의 핵심 수단이며, 이번 개정 논의는 탄소 가격 신호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은행이 2025년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이 탄소 가격 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ETS 수익은 약 850억 유로에 달했고, EU ETS 단독으로 388억 유로가 집계됐다.
이 수익은 청정에너지 전환 투자와 고배출 산업의 구조 전환 지원에 활용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뒷받침했다. EU ETS는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경제 구조 재편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으며, 탄소 가격 안정성 확보와 재정 동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EU ETS의 파급력은 역내에 머물지 않는다.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과 맞물려 EU 역외 지역의 탄소 가격 정책에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EU의 주요 무역 파트너들은 이미 탄소 가격 제도를 시행 중이거나 도입 준비 단계에 있다.
특히 CBAM은 EU에 수출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따라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구조여서, 탄소 관리 체계가 미흡한 기업은 수출 단계부터 비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아시아 지역 전반에서 탄소 가격 제도 강화 움직임이 가속화한 배경에는 이러한 EU의 정책 연동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 미칠 영향과 대응
산업계 일각에서는 ETS 개정에 따른 생산 비용 상승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카본 마켓 워치가 인용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유럽 시민 다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하고 있으며, 탄소 가격 상승이 전력 요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는 ETS에 대한 초기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책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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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ETS 개정 논의는 한국 경제에도 적잖은 과제를 제기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자체 배출권 거래제(K-ETS)를 운영해 왔으나, EU의 강화된 탄소 기준에 맞춰 산업별 탄소 전략과 에너지 정책을 재설계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상, EU 규제 변화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화학 등 에너지 집약 업종의 대EU 수출 원가에 직접 반영될 수 있다. 국내 탄소 시장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ETS의 할당 방식과 감축 목표를 EU 기준에 근접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CBAM 적용 시 추가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 제기된다. 재원 조달 측면에서도 국제 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청정에너지 투자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향후 3년간 750억 유로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다. 공공 재원과 민간 자본을 연계한 이 같은 통합 접근 방식은 한국의 탄소 중립 투자 전략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유사한 규모의 재원 조성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기술 격차와 비용 경쟁력 약화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확대와 정책 설계의 병행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한 준비
한국이 EU와의 무역 관계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탄소 규제 대응을 비용 부담이 아닌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전환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산업 공정의 탈탄소화를 앞당기며, 국제 탄소 시장 내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적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 EU와의 탄소 정책 협력 채널을 적극 활용해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고, 민간 기업의 탄소 감축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과 금융 연계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결국 EU ETS 개정 논의는 한국이 탄소 중립이라는 장기 목표와 수출 경쟁력이라는 단기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이중 방정식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이 공동의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으면, EU 시장에서의 무역 비용 증가와 기술 경쟁력 저하가 동반될 수 있다. 지금은 규제 변화를 단순히 수용하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선제적 투자와 국제 협력을 통해 탄소 전환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전략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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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Q. 한국의 탄소 거래제(K-ETS)가 EU ETS 개정의 영향을 받는 구체적 경로는 무엇인가?
A. 가장 직접적인 경로는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이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력·화학 제품에 대해 EU 역내 탄소 가격과 수출국 탄소 가격의 차액만큼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한국의 K-ETS 탄소 가격이 EU ETS보다 낮을 경우, 국내 수출 기업은 그 차이만큼 CBAM 부과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수출 원가가 직접 상승한다. 따라서 K-ETS의 탄소 가격 수준과 할당 방식을 EU 기준에 맞춰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이 될 수 있다.
Q. EU ETS 개정이 한국의 철강·석유화학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A. 철강과 석유화학은 탄소 집약도가 높아 CBAM 적용 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업종으로 꼽힌다. EU는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 중 하나이며, 탄소 비용이 수출 가격에 반영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은행 자료(2025년 기준)에 따르면 전 세계 배출량의 25% 이상이 이미 탄소 가격 제도 아래 놓여 있어 국제 탄소 비용 압박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해당 업종 기업들은 공정 탈탄소화 기술 도입과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를 통해 탄소 집약도를 줄이는 것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현실적 대안이다.
Q. 한국은 EU ETS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A. 단기적으로는 K-ETS 탄소 가격의 단계적 현실화와 CBAM 대상 업종에 대한 탄소 감축 지원 프로그램 확대가 시급하다. 중기적으로는 유럽투자은행(EIB)의 750억 유로 청정에너지 지원 모델처럼 공공 재원과 민간 자본을 연계한 탄소 중립 투자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EU 탄소 정책 협의 채널을 제도화해 규제 변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확보하고, 국내 기업의 탄소 공시와 감축 기술 개발에 대한 세제 혜택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