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 올라갈수록 불안해지는 이유는, 어쩌면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다음 직급이야.”
우리는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승진을 거듭하며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삶.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성장의 경로라고 믿는다. 마치 잘 설계된 사다리를 한 칸씩 올라가기만 하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감각이 찾아온다. 분명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가까워졌는데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유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 디딜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문제는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사다리형 커리어’라는 낡은 구조를 당연하게 믿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다리 모델은 어떻게 우리의 가능성을 가두는가
직업 사다리(Career Ladder)라는 개념은 산업화 시대의 조직 구조 속에서 탄생했다. 공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을 수직적으로 배치하고, 위계 속에서 통제하기 쉽게 만들었던 시대의 논리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정해진 방향으로 이동하는 이 구조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성공 모델처럼 여겨져 왔다. 문제는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구조 안에서만 자신의 가능성을 해석하려 한다는 점이다.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위’와 ‘아래’만 바라보게 된다. 옆을 돌아볼 여유도, 다른 방향을 탐색할 자유도 점점 사라진다. 결국 자신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오직 사다리를 오르는 데 필요한 능력만 반복적으로 강화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조직이라는 사다리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갇히기도 한다.
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는가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큰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딛고 있는 발판이 생각보다 훨씬 좁고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선형적 커리어 모델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내가 평생 매달려 올라온 사다리 자체가 시장의 변화나 기술 혁신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우물만 파며 정상 가까이 도달했는데, 어느 날 그 우물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은 빠르게 재편되고, 기술은 직업의 형태를 바꾸고 있으며, AI는 기존의 전문성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더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조직 안에서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사다리의 끝으로 갈수록 커리어는 성장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처럼 변해간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더 이상 위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옆을 보기 시작한다. 자신 안에 반복적으로 존재하던 관심과 감각, 그리고 태도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기 시작한다.
프랙탈커리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프랙탈커리어는 위를 향해 오르는 직선형 구조가 아니다. 나라는 중심에서 출발해 사방으로 확장되는 무늬에 가깝다. 사다리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추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좁은 선 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넓은 영토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마케팅 조직 안에서 일하던 사람이 자신 안의 ‘기획 패턴’을 발견하면, 그 능력은 브랜드 전략, 콘텐츠 제작, 강의, 글쓰기, 1인 창업 등 전혀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직업은 달라져도 핵심 패턴은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고유한 방식이다.
이제는 ‘다음 직급’보다 ‘다음 확장’을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다음 승진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내 안의 어떤 패턴을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하나의 사다리 안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보다, 자신의 핵심 패턴을 다양한 환경 속에서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다리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안의 무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딛고 선 자리에서 나만의 숲을 조금씩 넓혀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프랙탈 리플렉션 | 독자의 생각 정리]
Q1. 당신이 지금 오르고 있는 직업적 사다리의 꼭대기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 모습은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와 닮아 있는가.
Q2. 만약 내일 회사와 직함이 모두 사라진다면, 당신에게 남는 고유한 역량과 행동 패턴은 무엇인가.
(사다리라는 간판을 걷어낸 뒤에도 남는 자기만의 무늬를 떠올려보라.)
Q3. 수직 승진이 아니라 수평적 확장을 위해 이번 달에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가지 하나는 무엇인가.
(사이드 프로젝트, 글쓰기, 협업, 새로운 연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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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많은데 왜 커리어는 연결되지 않는가. 첫 번째 글에서는 ‘자기유사성’이라는 개념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 왜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보이는가
박소영|커리어온뉴스 편집장 · ‘프랙탈커리어’ 기획연재
[프랙탈커리어] 부분이 전체를 닮듯, 오늘의 태도는 미래의 커리어를 닮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