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20
20.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눈은 이미 골목 대부분에서 사라졌다. 그늘진 곳에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며칠이면 없어질 것 같았다. 아침 공기가 조금 달랐다.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공기가 먼저 바뀐다는 것을, 영수는 이번 겨울에 처음 알았다.
이번 겨울에 처음 안 것들이 많았다.
영수는 병원 복도를 걸었다.
이제는 들어올 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간호사들이 이름을 불렀다. 오래 입원해 있는 환자 몇 명은 영수를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영수도 손을 들었다. 그 교환이 자연스러웠다.
언제부터 자연스러워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 날, 낯설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날 오전, 남자가 영수를 불렀다.
진료실이 아니었다. 복도 창문 쪽이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봄 냄새가 들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창밖을 보다가 영수가 오는 것을 알아채고 돌아섰다.
"이리 와 봐."
영수는 다가갔다. 남자는 창밖을 가리켰다.
골목이 보였다. 영수가 매일 걸어오는 그 골목. 누군가 물동이를 이고 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고 있었다. 연탄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저기 보여?"
"네."
"저 골목에 몇 명이 있을 것 같아?"
영수는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 보이는 사람만요? 아니면 집 안에 있는 사람까지요?"
남자는 영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놀란 눈이었다.
"집 안까지."
"잘 모르겠어요. 많겠죠. 우리 골목만 해도 한 집에 여러 명이 사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지금 아픈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영수는 그 질문을 받아 잠시 서 있었다. 아픈 사람. 골목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던 날이 떠올랐다. 그 집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픈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집에.
"많을 것 같아요."
"그래."
남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생각하는 침묵이었다. 영수도 같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이 다 여기 올 수는 없어."
남자가 말했다.
"거리가 멀 수도 있고, 몸이 너무 아파서 못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처럼 처음에는 문 앞에서 못 들어올 수도 있고."
영수는 그 말을 들었다. '우리처럼'이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 이 사람도 한때 문 앞에서 망설인 적이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영수처럼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뜻인가.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남자가 계속했다.
"병원이 사람한테 가야 할 때도 있다고."
영수는 그 말의 뜻을 생각했다.
"직접 찾아간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으면 그게 좋지. 하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적어도 이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
영수는 그 말에서 멈추었다.
이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
아침에, 문 앞에 서 있던 아이에게 영수가 한 일이 그것이었다.
남자는 잠시 뒤 말했다.
"영수야."
"네."
"돌멩이 옮기는 거 알아?"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멩이를 옮기는 일.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고 들었다.
"강에 돌을 놓으면 그 돌을 밟고 건널 수 있잖아."
"네."
"그 돌을 놓는 사람은, 자기가 건넌 다음에도 그 자리에 돌을 두고 가. 다음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영수는 그 말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골목. 사람들. 아픈 사람들.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 돌멩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강을 건너는 전부일 수 있어."
영수는 그 말 안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물 한 그릇. 빗자루질.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문 앞에서 같이 서 있는 것. 문을 열어 주는 것.
그것들이 돌멩이였다. 작고,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돌멩이. 하지만 그 돌멩이가 있으면 건널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는 창문을 닫았다.
"오늘 선생님 힘들어 보여요."
영수가 말했다.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나왔다.
남자는 잠시 영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눈이 어제보다 피곤해 보여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창틀에 손을 얹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영수는 그 침묵 안에서 며칠전 밤을 떠올렸다. 깊은 밤 복도에 혼자 앉아 있던 뒷모습. 그날 영수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선택이 맞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낮이었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었고, 영수가 먼저 알아차렸다.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이 있었다.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한다는 것. 쉽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 엄마가 말했던 것과 같았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
두 사람이 다른 말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다.
그날 저녁, 영수는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마당에 있었다. 빨래를 걷고 있었다. 겨울 동안 집 안에만 있던 엄마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영수는 엄마 옆으로 갔다. 빨래 끝을 잡았다. 같이 개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빨래를 개는 소리, 바람 소리, 골목 어딘가의 사람 소리.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있었다.
빨래를 다 개고 나서, 엄마가 말했다.
"오늘도 갔다 왔어?"
"응."
"힘들지 않아?"
영수는 잠시 생각했다.
"가끔은요. 그래도 가고 싶어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그 끄덕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영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사람은 마당에 조금 더 서 있었다. 해가 골목 지붕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하늘이었다.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봄이 오려나 보다."
영수는 그 말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봄.’
그 말이 이상하게 컸다. 이번 겨울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그 한마디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처음 엄마가 아팠던 밤. 동전을 쥐고 뛰었던 골목. 병원 문 앞에서 손이 공중에 멈추었던 순간. 그 모든 것이 이 겨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 영수는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크게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필요한 자리에 작은 것 하나를 놓는 사람이었다. 그 돌멩이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고, 자신이 건네는 물 한 그릇이 될 수도 있었고, 자신이 열어 주는 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돌멩이를 놓은 사람은 기억되지 않아도 됐다. 다음 사람이 건너면 되었으니까.
영수는 생각했다. 자신이 건넌 강이 있었다.
엄마가 아팠던 겨울이 그 강이었다. 그 강을 건너는 데 돌멩이가 있었다. 문을 열어 준 의사가 있었다. 동전을 건넨 민호가 있었다. 문짝을 들어 준 춘식 아저씨가 있었다. 물동이를 내려놓은 순덕 아줌마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놓은 돌멩이 위를 영수는 건넜다.
이제 영수도 돌멩이를 놓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것들을. 하지만 작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방 안은 따뜻했다. 엄마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내일 아침이 오면, 또 골목을 걸을 것이었다. 또 병원 문을 열 것이었다. 또 무언가를 할 것이었다. 크지 않은 것을. 하지만 필요한 것을.
그것이 지금 영수가 아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골목 끝 어딘가에 그 병원이 있었다. 오늘 밤도 불빛이 켜져 있을 것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열릴 것이었다.
영수는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그 문을 여는 쪽에 서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아직은 열 살이었다. 갈 길이 멀었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걷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