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소득층이라도 대출 상환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연소득 6000만원 이상을 버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대출 연체율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급등한 집값 부담이 자녀 세대를 거쳐 부모 세대로 전이되면서 노년층의 금융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국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연령대·소득구간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연소득 6000만원 이상 가계 대출 차주 가운데 60대 이상의 연체율은 0.35%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소득 구간의 30대 연체율인 0.08%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신용대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60대 이상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0.35%로, 30대의 0.14%보다 약 2.5배 높았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대출 상환 능력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소득 고령층에서 연체율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단순한 소득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부모 부양과 자녀 지원이라는 이중 부담이 노년층의 재정 상황을 압박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0대 김모 씨는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노모 부양 비용과 결혼을 앞둔 아들의 신혼집 마련 지원이 재취업의 가장 큰 이유다. 그는 “주변에서는 먹고살 만한데 왜 그렇게 일하느냐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결혼하는 자식의 집 만큼은 마련해주고 싶어 대출까지 받았고, 이자 부담 때문에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은퇴 이후 시작한 자영업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소득 6000만원 이상 60대 이상의 연체율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13%에서 올해 0.35%로 뛰었다. 신용대출 연체율도 같은 기간 0.30%에서 0.35%로 상승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반면 같은 소득 구간의 30대는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은 연체율을 기록했다. 소득 수준은 비슷하지만 금융 부담의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 이어진 집값 상승이 세대 간 부담 전가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진단한다. 높은 주택 가격으로 인해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부모 세대가 자금 지원에 나서고, 그 부담이 결국 고령층의 대출 증가와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순둘 교수는 “수십 년을 일해도 자녀들이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부모 세대 사이에서는 ‘집 한 채는 마련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며 “자녀의 주거 문제와 자신의 노후 준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고령층의 경제적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의 연체율 상승이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라 주거비 상승과 세대 간 부양 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머물며 자녀의 주거비를 지원하는 이른바 ‘마처세대(마지막까지 자식을 책임지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집값 상승의 후유증이 노년층의 삶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의 : 부쌤모모 모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