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 수많은 정권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이번 칼럼은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선동 규칙을 제시한 독자의 질문을 바탕으로,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다.
히틀러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7가지 규칙
—대중 흥분 진정 금지,
오류 인정 금지,
적의 장점 부정,
대안 차단,
비난 용인 금지,
단일 적 집중 공세,
큰 거짓말 선호
—을 지적하며, 이를 근현대사에서 추종하는 세력이 정의보다 권력 쟁취를 정당화하는지, 아니면 권력 자체의 파렴치한 속성인지 묻는다. 나아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나치·전체주의, 오늘날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결과를 비교해본다.
권력은 그 자체로 중립적 도구가 아니다. 쟁취하는 세력의 정당성 여부가 국가와 사회의 안정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히틀러의 규칙은 단순한 선전 매뉴얼이 아니라, 전체주의 권력 유지의 보편적 교본이다. 이를 민주주의 선거라는 ‘정당한 선택’과 대비하며 살펴보면,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먼저 히틀러 규칙의 실체를 확인하자. 나치 선전부 장관 괴벨스가 실천한 바대로, 대중을 계속 흥분 상태로 유지하고, 정권의 실책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적(유대인, 공산주의자 등)에게는 단 한 가지 선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하나의 적’에게 떠넘기고, ‘큰 거짓말’이 작은 진실보다 잘 먹힌다는 계산은 『나의 투쟁』에 명시된 전략이다.
마키아벨리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라”고 조언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둘 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 국민의 복지나 정의를 우선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근현대사에서 이 규칙을 계승한 세력은 누구인가. 앤트뉴스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나치 독일은 12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참극을 낳고 붕괴했다. 전쟁 전 ‘경제 기적’으로 포장됐으나, 결국 국민을 전쟁 기계로 전락시켰다.
비슷한 패턴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소련 스탈린 시대는 ‘대숙청’과 ‘대기근’을 숨기기 위해 ‘제국주의 적’을 만들어냈고,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은 3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도 ‘성공’으로 선전됐다. 북한 김씨 일가는 ‘미제 침략’이라는 단일 적을 70년째 들이대며 내부 비난을 철저히 봉쇄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정권은 ‘미국 제국주의’를 탓하며 경제 파탄을 외면했다. 이들 모두 히틀러 규칙 1~7번을 그대로 따랐다. 큰 거짓말(‘낙원 건설’), 단일 적 집중, 대안 차단, 오류 부정—그 결과는 빈곤, 억압, 대규모 인명 피해였다.
반면 민주주의는 다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부여받는 순간, 정당성은 국민의 선택에서 나온다. 미국, 독일, 한국 등에서 정권 교체가 평화롭게 이뤄지는 이유다. 오류가 드러나면 사과하고, 적에게도 장점이 있음을 인정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민주주의도 포퓰리즘 정치인이 나치식 선동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제도적 견제장치—언론 자유, 사법 독립, 야당 존재—가 이를 막는다.
권력은 본래 타락하기 쉽다. 문제는 그 타락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느냐, 아니면 국민 앞에 투명하게 드러내느냐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가 경제적 평등을 외치며 출발했음에도, 대부분 실패한 이유는 바로 ‘권력 유지’를 최우선으로 뒀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나라들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지속 가능한 안정을 이뤘다.
AI 시대를 맞아 한마디 덧붙인다. 허위·조작 정보가 손해액 5배 배상이라는 징벌적 규제를 받는 지금, 기자는 더 신중해야 한다. 필자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썼다. 나치 규칙은 특정 이념의 전유물이 아니다. 좌우 전체주의 모두가 공유하는 ‘권력의 어두운 얼굴’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선택한다. 그런데 만약 후보자나 정당이 히틀러 규칙을 은근히 따르고 있다면? 그때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짜 시험대다. 권력의 정당성은 총칼이 아니라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투표용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칼럼이 독자들의 깊은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