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7문
Q. Which is the sixth commandment? A. The sixth commandment is, Thou shalt not kill.
문. 제6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ㆍ 살인하지 말라(출 20:13)

인류 역사상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강렬한 무게를 지닌 선언이 있다면 바로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법적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7문이 던지는 화두는 단순한 형사 처벌의 기준을 넘어선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국가나 개인의 소유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전권 사항임을 선포하는 '생명 주권'의 헌장이다. 이 계명은 타인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신성한 거부권이라 할 수 있다.
살인은 물리적 가해 이전에 '대상화(Objectification)'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을 나와 같은 감정과 역사를 지닌 '인격'이 아니라, 내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나 제거해야 할 '숫자'로 보는 순간 살인의 동기가 싹튼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사유에서 비롯되었다.
소요리문답은 "살인하지 말라"는 이 짧은 금령을 통해, 우리에게 타인을 향한 '공감의 의무'를 부과한다. 상대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숨을 끊지 않는 소극적 행위를 넘어, 그가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즈니스와 경제 현장에서도 이 계명의 울림은 크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거나, 무한 경쟁 속에서 동료의 정신적 생명을 갉아먹는 가혹한 조직 문화는 제6계명의 현대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히브리어 '라차(רָצַח)'라는 단어는 고의적인 살해뿐만 아니라 과실이나 부주의로 인한 생명 경시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경영자가 직원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고민하고, 사회가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보장하려 애쓰는 모든 행위는 사실 이 계명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이다. 생명을 자본의 하부 구조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바로 '생명 경영'의 핵심이다.

또한, 이 계명은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나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행위, 영혼을 파괴하는 중독이나 자기혐오 역시 제6계명이 금지하는 영역에 닿아 있다. 라틴어 경구 "비타 무투아(Vita Mutua, 상호적 삶)"처럼, 우리의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생명을 아끼는 것이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는 출발점이 되며, 공동체의 생명력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길이 된다. 헬라어 '조에(ζωή)'가 단순한 생물학적 목숨을 넘어 영원하고 풍성한 삶의 질을 의미하듯,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서로의 '삶의 질'을 높여주라는 사랑의 명령으로 승화된다.
소요리문답 제67문은 우리에게 생명의 수호자가 될 것을 요청한다.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존재의 가치가 효용성으로 치환되는 메마른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준엄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타인의 숨소리를 귀하게 여기고, 그가 내 곁에서 존재함에 감사하는 마음이 회복될 때 사회의 균열은 치유되기 시작한다.
생명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잠시 위탁받은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그 선물을 서로의 손에서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맞잡는 것, 그것이 제6계명을 가슴에 새긴 자들의 거룩한 문법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