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ח (아흐) - 형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
옛날에 의좋은 형제가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면서 전래동화에 나오는 그 '의좋은 형제'를 제외하고는 사이 좋은 형제를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형제들은 부딪히고 싸우며 일종의 경쟁관계에 있는 듯하다. 이는 성별과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제, 자매, 남매 등 2촌 관계는 대부분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마치 서로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관계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내 아버지에게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으며, 여동생은 셋이나 있다. 나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참 슬픈 일이지만, 아버지도 나도 형제들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항상 동생들은 형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적이 되고, 형들은 그게 못마땅하다. 이유가 어떻게 됐건 어릴 적에는 한두 살 차이만 나도 덩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두들겨 맞는 경우도 많다 보니 동생들의 오기와 억울함은 성장하면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형제' 혹은 '자매'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생각만 해도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그 존재, 바로 '형제' 혹은 '자매' 말이다.
성경을 보더라도 형제나 자매의 관계는 참 쉽지가 않다.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요셉, 다윗, 마리아와 마르다 등 대부분의 형제자매는 경쟁 구도에 있다. 한국어로 된 성경을 수십여 독, 히브리어 성경을 2독이나 했지만, 성경에서 '의좋은 형제' 같은 2촌 관계를 아직 본 적은 없다. 하긴, 오죽 사이좋은 형제들이 없었으면 '의좋은 형제' 같은 전래동화가 나왔겠냐 싶기도 하다.
게다가 부모의 사랑은 모든 형제에게 똑같이 돌아가기 힘들다. 아니,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나눠 주더라도 자녀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을 못 받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형제에게 투영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투영할 경우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에게 두들겨 맞고 자랐어도 형이나 언니에게 한두 번 맞은걸 자신의 트라우마의 근거로 인식한다. 굳이 두들겨 맞지 않고 욕지거리만 들었어도 모든 화살은 형제나 자매로 향하게 된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전가(轉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나 형제가 없는 최근 세대의 상황은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세대나 윗세대의 주변 사람들을 보면, 90% 이상은 형제나 자매 관계가 '2촌 원수'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 교회에서도 '형제님', '자매님' 같은 호칭을 굳이 애써 사용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무의식 속에서 '형제'나 '자매'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에 따라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 특히 기독교인들 중에 - '형제님', '자매님'이라며 아주 고상하고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참 많이 맞았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낫지 형제니 자매니 하는 것들이 제일 싫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