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묵음 작가의 장편소설 『빛과 그 그림자』는 역사적 격동과 개인적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하며,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탐구하는 수작이다. 이 작품이 지닌 문학적 성취는 거대담론과 미시서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역사의 구조적 폭력이 개인의 운명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섬세하게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작품의 서사 구조는 정교한 대칭성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부친의 시선은 상실의 순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딸의 관점은 부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는 단순한 시점의 교차가 아니라, 『빛과 그 그림자』라는 작품의 핵심 은유를 구조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정교한 장치로 기능한다. 상실과 갈망, 기억과 망각, 현존과 부재라는 대립항들이 서사 전반에 걸쳐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면서,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작가가 한국 전쟁 이후의 시대적 맥락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이념적 도식화를 철저히 거부한다는 것이다. 빨치산 부모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당대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편견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개인이 역사적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노력조차 시대의 구조적 한계 앞에서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역사와 개인의 복잡한 관계 양상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작가소개>
소설가 허묵음
자유업에 종사하던 오십 대 후반, ‘인생 2막’은 글 쓰는 삶을 살기로 뜻을 세우고 책 읽기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육십 대 중반에 자유업을 접고, 책 읽기와 시와 산문 습작과정을 거쳐 독학으로 소설 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저서로는 단편소설 모음집 「그 여인의 초상」과 산문집 「스친 인연 기억하기」, 장편소설 「그날이 올 때까지」, 「저마다 다른 삶이 있기에」 등이 있다.
<본문 詩 중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꽃은 언제나 방긋방긋 웃어준다
나도 꽃을 보면 빙그레 웃어주고
서로 웃어주는 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저만치 꽃밭에 피어있는 꽃이
날 보고 이리 오라 손짓한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어제 보던 그 얼굴이 아니다
오늘은 더 예쁜 색깔을 띠고
오늘은 더 밝은 미소를 짓고
어젯밤 꽃 나라에서 있었던 일
내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인다
<추천사>
문체적 차원에서 이 작품은 절제된 서정성과 냉정한 사실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극한 상황에서의 심리적 변화를 은유적 표현을 통해 압축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감상적 몰입을 경계하면서도 독자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작품 전반에 스며든 시간 의식은 매우 정교하다. 과거와 현재가 선형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순환적으로 교차하면서, 상처의 지속성과 치유의 가능성을 동시에 암시한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무엇보다 개별적 경험을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서사적 역량에 있다. 한 가족의 이산과 재회라는 특수한 사건이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집단적 무의식과 공명하면서, 개인사가 곧 민족사가 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한다. 이러한 서사적 확장은 작위적이거나 도식적이지 않으며, 인물들의 구체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어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 『빛과 그 그림자』는 분단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념적 대립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을 탐구하면서도, 역사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견지한다. 빛과 그림자라는 은유를 통해 삶의 양면성을 형상화하되,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지 않고 둘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추적한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우리 시대 문학이 도달해야 할 하나의 준거점을 제시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화해와 용서의 주제는 결코 값싼 감동이나 일방적 위안에 머물지 않으며,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허묵음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70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