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와 섯알오름을 아시나요?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는 '알뜨르'와 '섯알오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곳이 있다. 풍광 또한 아름다워서 올레길 10코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방산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걷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잃고 만다.
'알뜨르'는 제주도 말로 아래에 있는 넓은 들, '섯알오름'은 서쪽에 있는 알오름이라는 뜻이다.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과 풍요로운 전경이 펼쳐지는 이곳이 바로 민간인 집단 학살 터라는 역사적 사건 앞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알뜨르에 비행장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 일본군이 모슬포 주민을 강제징용하여 만든 군용 비행장이다. 현재 격납고 20기, 지하벙커, 관제탑이 남아있다. 카미카제 훈련을 위한 전초기지로도 사용되었으며 알뜨르 전 지역을 군사요새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근처에 있는 '섯알오름'에 탄약창고를 만들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에 의해 탄약고가 폭파되었다. 이때 오름의 절반이 날아가면서 큰 구덩이가 생겼는데 이곳에서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6~20일경, 그리고 약 한 달 후인 8월 20일(음력 7월 7일)에 두 차례에 걸쳐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는데 예비검속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었다.
예비검속섯알오름유적지 역시 올레길 10코스에 해당한다. 알뜨르비행장 주차장에서 300미터 정도 거리이다. 300여 미터의 길은 쭉쭉 뻗은 나무와 흙길이 조화를 이루어 걷는 맛이 나는데 여름에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환상의 길을 만든다. 그 길 끝에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가 있다.
작열하는 한여름 태양의 기세에 눌려 기진한 채로 다다른 섯알오름에 생각지도 못한 '양신하' 해설사님이 계셨다. 섯알오름에 수차례 다녀간 일행도 그분에 대해서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며 행운이라고 했다. 유명한 분이신가 하는 생각도 잠시 노구의 해설사 선생님이 자신을 소개했다.
예비검속 희생자 중에 해설사 선생님의 가족 두 분이 있다고 하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유족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육화 된 증언이 생생했다.
예비검속이 4.3의 연속성상에 있지만 예비검속은 완전히 다르다고 하면서 한국에서는 정보를 입수할 수가 없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정보를 수집해 자료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수십 년 간 써온 일기(예비검속으로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포함)가 전시되기도 했단다. 연세가 무색할 정도의 총기로 당신이 조사한 자료에 입각해 연도와 총살시점의 지휘․명령자들의 이름을 꿰고 계셨다.
사비를 들여 섯알오름학살터에 5개의 비석을 만들고 유족이었던 한 미망인의 기부로 그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조형물과 비석을 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트럭에 실려 학살터로 끌려가면서 옷가지며 고무신을 길에 떨어뜨려 혹시라도 가족들이 찾아올 수 있게 표시를 하던 그 심정을 생각하자 참담했다. 추모비 제단 앞에도 검정 고무신이 놓여있다. 검정 고무신에 그토록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니 참배를 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제주 4․3 사건이나 좌익활동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무고나 밀고, 경찰과의 불화, 개인적인 감정 다툼으로 예비검속되어 억울하게 희생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신하' 해설사 님의 가족도 그러했다.
유족들은 8월 20일 사건 발생 당일부터 학살 현장에 들어가 유해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군경 당국의 출입 통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6년이 지난 1956년 3월 30일 유해 63구를 수습해 한림면 금악리 2754번지 부지에 안장하고 5월 18일에 132구의 시신을 수습하였으나 시신의 신원을 구별할 수 없어 132개의 칠성판에 큰 뼈를 대충 수습하여 이장했다.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의 묘'라 칭하고 모시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 맺힌 그 세월을 어찌 보냈을까?
양신하 해설사님은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산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노구의 몸으로 대정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며 4.3 평화 인권교육명예교사로 활동 중이다. 건강하게 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시길 빌어본다.
알뜨르 비행장과 예비검속 학살터를 유족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나오는 길은 처음에 걸어 들어간 길과 달랐다. 달라야만 했다. 한여름 뙤약볕이 기승을 부려도 더위를 잊었고 배롱나무의 꽃이 말을 걸어왔으며 검정고무신이 춤을 추었다.
백. 조. 일. 손.
우리 모두가 자손이다. 자손은 살아남아 후대에 산 증언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제주도에 가면 올레길 10코와 정확하게 겹쳐지는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으로 걸음을 옮겨서 듣고, 보고, 느낀 것을 퍼뜨려야 한다.
산자의 몫이자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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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품다'는 뜻이다. 4.3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제주 사람들은 '쿰의 정신'을 계승한다.
K People Focus 현혜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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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맹시] 출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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