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가 된 대륙, 그리고 사라지는 환대: 유럽의 거대한 빗장을 바라보며

-요새가 된 대륙의 비명: 유럽은 어떻게 환대라는 영혼을 팔아치웠는가.

-2만 유로면 사람을 안 받아도 됩니까? 인류애에 가격표를 붙인 유럽의 충격적 선택.

-난민 수는 줄었는데 공포는 왜 늘었나? 유럽 정치인들이 숨기고 있는 '통제의 연극'.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최근, 유럽연합(EU)의 새로운 이민 정책을 발표했다. EU는 망명 신청이 거부된 사람들을 EU 국경 외부에 설립될 '송환 센터'로 보내는 계획을 포함하여 불규칙 이민을 단속하기 위해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EU는 자국민의 송환에 협력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한 무역 우대 조치를 보류하는 등 이민 통제에 무역 정책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 외에도, EU는 디지털 국경 감시 시스템인 EES(Entry/Exit System)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비EU 시민의 생체 데이터를 추적하여 국경 보안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록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일부 회원국이 이러한 계획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EU 전체적으로는 이민 정책을 강화하려는 광범위한 정치적 의지가 존재한다.

 

낭만의 종말, 통제의 서막

 

오랜 시간 우리에게 유럽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기차 안에서 여권 검사 없이 "본 쥬르"와 "구텐 탁"이 자연스럽게 섞이던 곳, 그 느슨한 경계가 주는 낭만이 있던 땅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알던 그 유럽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 유럽 대륙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차가운 디지털 장벽과 법적 요새가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오늘 단순히 유럽연합(EU)의 바뀐 이민 정책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인권'과 '연대'를 외치던 거대한 문명사회가 어떻게 두려움 앞에 스스로 가두고,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가치를 안보라는 이름과 맞바꾸고 있는지, 그 서늘한 변화의 현장을 한 사람의 목격자로서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것은 정책 보고서가 아니라, 닫혀가는 문명에 대한 일종의 비망록이다.

 

역설의 시대: 줄어든 숫자와 커지는 공포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유럽으로 향하는 발길은 분명 줄어들었다. 2025년 공식 통계는 비정규 입국자가 전년 대비 20%나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라면 빗장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도 될 시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폭주하고 있다. 정치라는 괴물은 숫자를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불안'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의 바람은 각국 정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EU 집행위원 매그너스 브루너의 "사람들에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라는 말은 이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 서늘한 고백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모든 조치는 실질적인 위기관리라기보다는,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한 거대한 '정치적 연극'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연극의 대가는 실로 혹독하다.

 

시선 밖으로의 추방: '송환 센터'라는 이름의 유배지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인간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EU는 이제 자신들의 땅에서 환영받지 못한 자들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이른바 '송환 센터'의 건립이다. 망명 신청이 거부된 사람들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EU가 지정한 제3국, 즉 '안전하다'라고 믿고 싶은 어딘가의 수용소로 보내겠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속담을 국가 정책으로 구현한 셈이다. 내 집 앞마당에서는 비명이 들리지 않게 하겠다는 이기적인 평화다. 심지어 유럽을 떠나기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더 긴 구금 기간이라는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인권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유럽이, 이제는 사람을 짐짝처럼 취급하며 "내 눈앞에서만 사라져 달라"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덴마크와 같은 국가들이 주도하고 이탈리아가 실험적으로 시행한 이 모델이 이제 유럽 전체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던 '인도주의적 유럽'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빵과 자유의 거래: 무역을 무기로 삼다

 

유럽의 변화는 국경선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개발도상국을 향해 내밀던 '원조'와 '무역 혜택'이라는 손길에도 족쇄를 채웠다. 과거 일반특혜관세제도(GSP)는 가난한 나라들의 인권이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당근이었다. "당신들이 노동자를 존중하면, 우리도 관세를 깎아주겠소"라는 선의의 거래였다.

 

하지만, 이제 그 조건에 섬뜩한 조항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우리가 쫓아낸 당신네 국민을 다시 받아들이라"라는 조건이다. 만약 자국민 송환에 협조하지 않으면, 관세 혜택은 철회된다. 이것은 더 이상 선의의 원조가 아니다. 경제적 생존권을 담보로 한 협박이자, 가난한 나라에 국경 경비대의 역할을 강요하는 신식민주의적 행태로 비칠 수 있다. 아시아의 쌀 농부들이 유럽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것이 바로 냉혹한 국제 정치의 민낯이다.

 

연대의 가격표: 인간 한 명에 2만 유로

 

유럽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적나라하다. 이탈리아나 그리스처럼 지중해를 접한 최전선 국가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에 대한 EU의 해법은 '연대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연대의 상품화'에 가깝다.

 

각 회원국은 난민을 나누어 받거나, 받기 싫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 가격은 망명 신청자 1인당 2만 유로. 인간의 존엄성에 가격표가 붙은 순간이다. “나는 저 사람을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싫으니, 대신 돈을 줄게"라는 논리가 국가 간의 공식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내무장관이 자국민들 앞에서 "우리가 돈을 아끼기 위해 난민 3천 명을 받았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돈으로도, 사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딜레마 속에서 유럽의 '하나 됨'은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 여권 도장의 종말과 감시의 일상화

 

이제 낭만적인 여행의 시대도 끝났다. 여권에 찍히던 입국 도장의 아날로그 감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가운 생체 데이터가 대신한다. 2025년 10월부터 시행된 입출국 시스템(EES)과 곧 도입될 유럽 여행 정보 및 허가 시스템(ETIAS)은 유럽을 거대한 디지털 요새로 탈바꿈시켰다.

 

우리의 지문과 얼굴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1초의 오차도 없이 추적된다. 비자 면제국이었던 한국, 미국, 영국 시민들도 이제는 사전 허가 없이는 비행기에 오를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다. 모든 이방인을 잠재적인 감시 대상으로 보겠다는 선언이다. 기술은 국경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자 철조망을 촘촘하게 두르는 데 사용되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가면을 쓴 이 통제 시스템 앞에서, 여행자가 느꼈던 해방감은 이제 압박감으로 대체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되려 하는가

 

유럽의 새로운 이민 정책을 훑어 내려가며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이것은 단순히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일부 국가들이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거대한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해 보인다. '요새 유럽(Fortress Europe)'은 이제 비유가 아니라 실체가 되었다. 물리적 장벽은 더 높아지고, 법적 장벽은 더 교묘해졌으며, 디지털 장벽은 더 촘촘해졌다.

 

안보는 중요하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됨'의 가치를 헐값에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쫓겨난 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짓고, 가난한 나라를 돈으로 옥죄며, 이웃을 돈으로 계산하는 이 차가운 시스템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문명의 모습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벽을 쌓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문을 여는 자가 될 것인가. 지금 유럽은 그 질문에 대해 가장 비극적인 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작성 2025.12.10 00:03 수정 2025.12.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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