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항아리와 새 포도주: 종교의 숲에서 길을 묻는 당신에게

-평생 헛수고했다?, 전 세계 종교가 숨기고 있는 '구원의 사다리'라는 치명적 착각.

-물은 절대로 포도주가 될 수 없다, 오직 이 '사건'이 당신의 인생에 일어나기 전까지는.

-율법의 물을 버리고 은혜의 포도주를 마셔라: 당신의 텅 빈 항아리를 채울 단 하나의 해답.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먼 이국 이슬람 땅의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저녁, 공기를 가르는 아잔 소리에 맞춰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의 무슬림 친구 압둘라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작은 가게 앞 공터에 양탄자를 깔고 메카를 향해 경건하게 엎드린다. 그의 깊이 휘어진 허리와 기도로 다져진 이마의 굳은살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성실한 신앙 앞에 경외감을 느끼면서도 영혼을 뒤흔드는 질문 하나를 붙들게 된다. "그가 매일 길어 올리는 저 정결한 물과, 내가 받은 포도주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2천 년 전 갈릴리의 어느 잔칫집을 떠올린다. 그곳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대하고도 비참한 혼인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완전히 떨어져 버린 잔치. 이는 하나님이라는 신랑을 떠나 스스로 힘으로 행복을 만들어보려 했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율법의 차가운 물만 남은 텅 빈 항아리들 앞에 예수께서 서 계셨다. 그분은 잔치의 비극을 책망하지 않으신다. 다만 실패한 우리의 모든 종교적 노력과 도덕적 성취를 상징하는 텅 빈 여섯 개의 돌항아리를 가리키신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는 인간 중심의 종교 사상에서 신 중심의 계시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선포한다. 기독교 구원의 핵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이를 받아들이는 '믿음'에 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는 지도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철저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는 거울일 뿐이다. 특히 예수는 죄의 개념을 내적인 동기로 심화시켜 인간이 스스로 노력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음을 밝히셨다. 결국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에 인간은 스스로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존재다.

 

그 전적인 무능력 속에서 하나님은 '은혜'라는 해답을 주셨다. 이 은혜는 인간의 공로나 자격 없이(Unmerited), 아무 대가 없이(Free),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일방적인 선물(Unilateral)이며,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주어지는(For the Unworthy) 파격적인 호의다. 타 종교가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Do)?"를 묻는다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Done)?"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혼인 잔치의 하인들이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텅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웠을 때, 그 맛없는 맹물 같은 우리의 인생은 가장 좋고 깊은 포도주가 되었다. 이 기적의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신이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었다는 개념은 타 종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선언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음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인장이었다.

 

우리는 이제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이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은 또 다른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죗값을 치르셨음을 신뢰하는 과정이다. 나의 친구 압둘라가 평생에 걸쳐 채운 그 정결한 물을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단 한 순간에 포도주로 바꾸어 주시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 물을 채웠느냐가 아니라 포도주를 만드시는 신랑을 믿고 빈 항아리를 내어 맡기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두 세계가 말하는 ‘사랑’의 풍경은 겉보기에 매우 닮아 있으면서도 그 뿌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향기를 내뿜는다. 이 글은 한 무슬림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며 나누었던 영혼의 대화를 갈무리한 기록이다.

 

의무의 물을 채우는 고독한 몸부림

 

무슬림으로서 그의 삶은 텅 빈 항아리에 깨끗한 물을 채우려는 거룩하고도 고독한 몸부림이다. 그는 알라의 율법인 '샤리아'라는 두레박을 들고, ‘복종’이라는 우물에서 매일 물을 길어 올린다. 무슬림들에게 사랑은 곧 ‘순종’이다. 꾸란은 말한다. “말하라, 너희가 알라를 사랑한다면 나(무함마드)를 따르라. 그러면 알라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라.” (꾸란 3:31)

 

여기서 사랑은 조건부의 성격이 짙다. 인간이 먼저 행동하고, 그 행동이 정결할 때 비로소 신의 자비(Mercy)가 임한다. 압둘라는 기도와 금식, 자선으로 자신의 영혼을 씻어내며 알라의 인정을 기다린다. 그의 성실함은 눈물겹도록 고귀하지만, 그 깨끗한 물이 결코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이 있음을 나는 본다. 그것은 ‘내가 과연 충분히 행했는가?’라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종의 그림자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쏟아부어진 사랑, 본질을 바꾸는 포도주

 

나의 믿음은 그와 다른 지점에 서 있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인간이 채우는 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쏟아부으신 ‘포도주’다. 성경은 선포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사랑은 조건이 없다. 압둘라가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 우물가로 달려갈 때, 기독교의 하나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비참한 잔칫집으로 먼저 찾아오신 신랑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하신 일은 우리에게 더 많은 물을 길어오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우리의 맛없는 맹물 같은 현실과 실패의 상징인 텅 빈 돌항아리를 가리키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우리의 빈 항아리를 그분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때 그분은 우리의 본질 자체를 바꾸신다. 율법의 차가운 물을 은혜의 향기로운 포도주로 말이다. 이슬람의 사랑이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나오는 경외라면, 기독교의 사랑은 ‘신랑과 신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기쁨이다.

 

십자가, 초승달이 담지 못한 신의 희생

 

이슬람에서도 알라는 ‘알 와두드(Al-Wadud, 사랑이 넘치는 분)’라 불린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신의 희생’이다. 이슬람 신학에서 신이 인간을 위해 고난을 받거나 죽는다는 것은 신의 영광을 훼손하는 수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바로 그 ‘수치’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10)

 

기독교의 사랑은 단순히 자비를 베푸는 수준을 넘어, 신이 인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자기 비움’의 사랑이다. 압둘라가 믿는 알라는 보좌 위에서 명령하지만, 내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신다. 복음은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 물을 채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포도주를 만드시는 신랑을 믿고 그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에 달려 있다.

 

당신의 항아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오랜 세월 압둘라의 곁을 지키며 나는 그를 향한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을 느낀다. 그의 성실한 복종을 나는 절대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평생에 걸쳐 채운 그 물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단 한 순간에 기쁨의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을 맛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기쁨이 모두 소진된 잔치처럼 우리의 삶이 수치와 절망으로 가득 찼는가? 의지하던 것들이 바닥을 드러냈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 자리가 신랑이신 주님을 만날 가장 좋은 기회다. 내 힘으로 맹물을 채우려 애쓰던 율법의 수고를 멈추고,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준 그분의 사랑 앞에 항복해야 한다.

 

세상은 당신에게 "더 좋은 물을 길어오라"라고 다그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너를 위해 최고의 포도주를 준비했다."

 

작성 2025.12.20 19:21 수정 2025.12.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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