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83화 Happy Christmas~ 그리고 빨간 양말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어느새 내가 산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결국 선물의 날이 아니라 기억의 날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빨간 양말 하나로 환해지던 아침

어릴 적 크리스마스 아침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눈으로 머리맡을 더듬다 우연히 마주친 빨간 양말 하나. 여섯 살이었는지, 일곱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양말 안에 들어 있던 과자와 작은 선물들, 그리고 그 순간의 설렘만큼은 또렷하다. 그 빨간 양말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 같았고,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산타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가셨다고 말씀해주셨다. “굴뚝으로 들어오셨어.”라는 설명은 조금도 의심스럽지 않았다. 내가 살던 시골집에는 실제로 굴뚝이 있었고, 연기가 오르내리던 그 굴뚝은 어린 나에게 산타가 오기에 충분한 통로였다.

 

그날의 크리스마스는 선물의 크기나 개수로 기억되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양말을 뒤집어 보며 웃던 시간, 부모님의 표정, 집 안에 흐르던 공기까지 모두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빨간 양말 하나로 하루가 환해지던 시절이었다.

 

어느새 내가 산타가 되었다

그렇게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산타가 되었다. 

 

아들이 세 살이 되던 해, 나는 출근을 한다며 집을 나섰다가 다시 산타 복장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산타할아버지를 멀찌감치서 바라보았다. 믿고 싶은 마음과 낯선 존재에 대한 경계심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네 살이 되었을 때는 조금 달랐다. 산타할아버지를 꼭 안아주었다. 믿음이 조금 더 자란 만큼, 품도 조금 더 열려 있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는 산타를 바라보며 살짝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그해에는 트리 아래에 조용히 선물을 두었다.

 

그리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빠를 알아볼 것 같아, 산타는 잠시 뒤로 물러섰다. 대신 트리 밑에 선물을 숨겨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 선물을 발견할 아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나 또한 아이처럼 설레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아이들만의 날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흔히 아이들을 위한 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날이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쁘게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어 보는 날.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따뜻함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빨간 양말 하나로 행복해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은 또 다른 아이에게 그 기억을 건네고 있다. 그 기억은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형태는 달라지고 방식은 바뀌지만, 마음은 이어진다. 굴뚝 대신 트리 아래로, 산타 대신 부모의 손으로 말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어떤 기억 하나를 다음 세대에게 건네고 있는가?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은 선물일까, 아니면 그날의 공기와 표정일까?

나의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는가?

 

크리스마스는 결국 선물의 날이 아니라 기억의 날이다. 

빨간 양말 하나로 세상이 환해지던 순간처럼, 지금 이 시간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따뜻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지금 내가 건네는 작은 장면 하나가, 훗날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시 반짝일 수 있도록 말이다.

 

Happy Christmas.
그리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빨간 양말의 기억과 함께.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5.12.29 11:02 수정 2025.12.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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