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 저희는 노 키즈 존이라 입장이 안 됩니다." 35도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 주말, 유모차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카페 문을 열었던 젊은 부부는 채 1분도 되지 않아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아이가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지만 단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당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실 권리조차 박탈당한 엄마는 길거리에서 "내가 죄인인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것이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을 외치는 202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식당 5곳에서 연속으로 입장을 거부당했다는 한 가장의 사연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애가 밥 먹다 그릇이라도 깨면 어쩔 거냐", "다른 손님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일부 부모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당에서 고성방가하는 취객은 받아주면서, 얌전히 밥 먹는 아이까지 싸잡아 '잠재적 민폐 덩어리'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폭력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 키즈 존(No Kids Zone)'은 어느새 500여 곳이 넘을 정도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문제는 이 '배제'의 논리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60세 이상 노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 시니어 존', 중학생을 막는 '노 틴에이저 존'까지 등장했다. 나약하거나 관리하기 귀찮은 존재들을 하나둘씩 지워버리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 모두 언젠가 그 배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업주들은 "영업의 자유"라고 항변한다. 내 가게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논리다. 하지만 헌법은 그 어떤 자유도 평등권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만약 '노 흑인 존'이나 '노 장애인 존'이 등장했다면 온 나라가 뒤집혔을 것이다. 유독 아이들에게만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장사가 안돼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은 비겁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아이들은 사회의 거울이다. 식당과 카페 입구에 붙은 '출입 금지' 딱지를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약자는 배제해도 되는구나"라는 그릇된 인식을 무의식중에 심어주게 된다. 35년 경찰 생활 동안 수많은 청소년 범죄를 다뤘지만,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결국 사회를 향해 칼을 겨누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혐오는 결국 혐오를 낳는다.
정부의 태도 또한 모순덩어리다. 저출산 대책으로 수백조 원을 쓰면서, 정작 아이와 부모가 마음 편히 갈 곳 하나 없는 현실은 방치한다. 아이가 시끄럽게 구는 것은 당연한 성장 과정이다. 이를 "부모가 교육을 안 해서"라며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사회적 직무 유기다. 공공장소 예절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진국들은 다르다. 유럽의 많은 식당은 아이를 위한 색칠 놀이 도구를 내어주고, 아기 의자를 당연하게 비치한다. 아이를 '통제 대상'이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막는 '차단막'이 아니라, 조금 시끄러워도 "애들이 다 그렇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사회적 여유'다.
우리는 모두 한때 시끄럽고, 밥을 흘리고, 떼를 쓰는 아이였다. 누군가의 인내와 배려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빚을 갚기는커녕 아이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다. 아이가 사라진 조용한 식당, 아이가 없는 깨끗한 거리.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 당장 그 오만방자한 '노 키즈' 팻말을 떼어내라.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