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등을 제치고 주인공이 된 2등의 반란
세상의 모든 경주는 1등을 기억한다. 금메달리스트가 영광을 독차지하고, 모든 목록의 첫 번째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선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인 성경은 이 보편적인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시작한다. 히브리어 성경의 첫 단어인 ‘베레쉬트(בְּרֵאשִׁית, 태초에)’의 첫 글자는 알파벳의 첫 번째인 '알레프(א)'가 아니라, 두 번째 글자인 '베트(ב)'다. 이는 마치 국가 행사에서 왕이 등장하기도 전에 의전관이 먼저 문을 여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준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천지창조의 순간 모든 글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첫 글자로 써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영화로운 글자를 뒤로하고 겸손해 보이는 두 번째 글자 ‘베트’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1'이 아닌 '2'여야만 했을까? 왜 절대적인 '나'를 상징하는 알레프가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베트가 창조의 첫 문을 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 속에 현대인이 잃어버린 공동체의 신비와 존재의 목적이 숨어 있다. 소리 없는 알레프가 신의 본질적 신비라면, 베트는 비로소 인간이 거주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집'이자 '세상'이다. 집은 누군가를 품고 보호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베트는 포용과 도구로써의 지혜(חָכְמָה, 호크마)를 상징하기도 한다. 성경이 베트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창조가 하나님의 독백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따뜻한 대화의 시작임을 선언하는 선포이다.
텐트에서 집으로, 유목민의 안식처
베트(ב)의 기원은 고대 셈어의 '바이트(Bayit)'에서 왔다. 이는 글자 그대로 '집(House)' 혹은 '텐트'를 의미한다. 고대 근동의 유목민들에게 집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친 광야의 모래 폭풍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결속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베트의 상형문자 형태를 보면 입구가 있는 방의 평면도와 흡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히브리어 전치사로서의 베트(בְּ)가 '~안에(In)'라는 뜻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베트는 무언가를 담고 품어주는 공간적 속성을 본질로 한다.
경제적,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고대 사회의 '집'은 경제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가축을 지키고 식량을 저장하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모든 생산과 소비의 기반이 베트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갈구했던 것은 '베트(בֵּית, 집)'를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집보다 먼저 '하나님의 집'인 성막과 성전을 제시한다. 이는 베트라는 개념이 사적 소유물을 넘어,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적인 성소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창세기가 베트로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주라는 거대한 집을 지으시고, 그 안에 인간을 초대하셨다는 역사적, 공간적 맥락을 전제하고 있다.

현자들의 논쟁과 구조적 신비
유대 신비주의 해석인 미드라시(Midrash)에서는 왜 베트가 첫 번째가 되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알레프가 하나님 자신의 유일성을 상징한다면, 만약 알레프로 창조가 시작되었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위엄에 압도되어 곧바로 소멸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신 하나님은 '복(Blessing)'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루크(בָּרוּךְ, Baruch)'의 첫 글자인 베트를 선택하셨다. 즉, 창조의 목적은 심판이나 권위가 아니라 '축복'에 있다는 관점이다. 반면, '저주'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루르(אָרוּר, Arur)'가 알레프로 시작하기 때문에, 창조의 첫머리에 저주의 가능성을 두지 않으려 하셨다는 신학적 배려도 존재한다.
구조적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베트의 독특한 형태에 주목한다. 베트(ב)는 위, 아래, 그리고 뒤쪽이 막혀 있고 오직 앞(왼쪽)으로만 열려 있다. 이는 인간의 실존적 위치를 설명하는 탁월한 메타포다. 히브리어는 좌횡서인 현대 우리말과 달라서 우횡서, 즉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왼쪽이 앞(미래)이 되고, 오른쪽이 뒤(과거)가 된다. 뒤(오른쪽)는 과거이자 알레프의 영역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에 속한다. 위와 아래는 하나님의 권능과 땅의 기초다. 따라서 인간은 뒤를 돌아보며 창조의 이전(Pre-creation)을 캐묻기보다, 열려 있는 앞을 향해, 즉 역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윤리적 지침을 준다. 언어학자들은 또한 베트가 '둘(2)'을 상징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창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적 이원성'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집'이 사라진 시대, 베트의 회복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집(Home)'이 사라지고 '부동산(Property)'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더 넓은 평수의 집을 갈망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관계를 누리는 법은 잊어버렸다. 창세기가 베트(집)로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묻는다. 우주는 차가운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도록 설계된 따뜻한 '집'이다. 과학적 데이터가 우주의 광대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증명할 때, 베트의 신학은 그 광대한 우주가 사실은 당신을 위해 준비된 요람이라고 강변한다.
또한 베트가 숫자 '2'를 의미한다는 점은 현대의 극단적 개인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1(알레프)의 상태는 완벽하지만 외롭다. 창조는 1이 2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 "사람이 자기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 맛싸성경)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베트의 정신이다. 관계는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생명이 피어나는 조건이다. 통계적으로도 고립된 개인보다 건강한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이 훨씬 더 높은 삶의 만족도와 회복 탄력성을 보인다는 데이터는 베트의 원리가 단순한 종교적 수사가 아님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베트의 닫힌 세 면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뒤), 근거 없는 낙관이나 절망(위아래)에 매몰되지 않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열린 방향(앞)으로 전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베트는 우리에게 '안에 머무름'과 '밖을 향함'의 균형을 가르친다. 집은 휴식의 공간인 동시에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다. 창세기가 베트로 시작된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이라는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얻고, 다시금 세상을 축복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라는 사명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당신은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베트'라는 작은 글자 하나가 품고 있는 우주적 설계는 실로 방대하다. 성경의 첫 글자가 알레프가 아닌 베트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보다 인간과의 만남을, 자신의 유일성보다 우리와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셨음을 의미한다. 거룩한 침묵(א)에서 나와 소통의 집(ב)을 지으신 창조주의 마음이 바로 창세기의 첫 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의 집을 짓고 있는가? 혹시 모든 문을 닫아걸고 타자의 진입을 거부하는 고립된 성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기초도 없이 화려한 외벽만 치장하느라 정작 영혼의 안식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베트가 가르쳐주는 지혜는 명확하다. 인생은 나 혼자 1등이 되기 위한 경주가 아니라,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환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베트'다. 그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우리'라는 신비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삼위가 사랑의 연합을 통해 존재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도 그런 삶을 지향해야 한다. 성경의 첫 글자 베트가 열어준 그 열린 문을 통해, 당신의 삶에도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길 바란다. 우리가 짓는 모든 집이 누군가에게는 피난처가 되고, 신에게는 거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