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형작가 로빈의 작품 〈생명하나〉는 물결처럼 번지는 동심원의 연속을 통해 ‘하나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화면 위를 겹겹이 덮은 원은 서로 다른 존재의 흔적이 아니라, 동일한 생명이 시간의 층위를 따라 남긴 파동이다. 시작과 끝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 흐름은 탄생과 소멸, 존재와 부재가 순환하는 생명의 본질을 은유한다.
작가는 생명을 단일한 개체로 고정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확장되고 수축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마치 물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빗물이 무한히 퍼지듯, 생명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주하며 세계 속으로 번진다. 〈생명하나〉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꺼운 물감의 결과 함께 균열이 도드라진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흔적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상처의 기록’으로 작동한다.
균열은 파괴의 흔적이 아니라 시간의 증거다. 매끈하고 완벽한 생명은 존재하지 않듯, 이 질감은 삶의 불완전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생명의 지속은 상처와 치유, 생성과 퇴화의 반복 위에 놓여 있다. 작가는 그 사실을 화면 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 거친 질감 덕분에 〈생명하나〉는 평면이 아닌 ‘숨 쉬는 존재’로 느껴진다. 보는 이의 시선이 머물 때마다 다른 표정을 드러내며, 생명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 움직인다.
작품의 색채는 회녹색의 차분한 바탕 위로 흰색과 어두운 색이 교차하며 리듬을 이룬다. 이는 마치 의식과 무의식, 빛과 그림자가 서로 호흡하는 생명체의 내부 구조를 닮았다. 어느 한쪽이 지배하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빛이 그림자를 감싸며, 어둠이 빛의 존재를 강조한다. 이런 균형은 생명체의 숨결과 닮아 있으며, 생명의 에너지가 양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생명하나〉는 그렇게 ‘균형의 미학’을 통해 생명의 근본 리듬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은 시간에 따라, 그리고 보는 사람의 리듬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인다. 낮에는 원의 깊이가 밝게 드러나고, 저녁에는 그림자가 강조되어 입체감이 더해진다. 이는 생명이 특정한 순간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의 일부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생명하나〉의 원들은 분리되어 있는 듯하지만, 중앙과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감은 작품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힘이자,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단순한 형태의 반복이 아니라, 존재의 순환과 통합을 담은 하나의 철학적 서사라 할 수 있다. 〈생명하나〉는 관객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 파동은 지금의 나인가, 혹은 지나온 나의 시간인가?” 그 물음은 단지 미술적 사유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나의 생명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그것은 수많은 흔적과 균열, 빛과 어둠, 시작과 끝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흔적의 연속체’다. 그래서 〈생명하나〉는 ‘여럿이 모인 하나’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여럿’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