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머리'가 되고 싶어 하는 시대
우리는 '1등', '최고', '우두머리'를 찬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직의 정점에 서서 명령을 내리고,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는 리더의 자리는 수많은 이의 동경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수많은 리더의 몰락을 목격한다. 권위가 독선이 되고, 우두머리의 자부심이 타인을 향한 무관심으로 변질될 때, 그 찬란했던 왕관은 순식간에 영혼을 짓누르는 굴레가 되고 만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스무 번째 글자인 '레쉬(ר)'는 바로 이 '머리(Head)'의 신비를 담고 있다. 이 글자는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머리인가, 아니면 그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고개를 숙인 머리인가. 레쉬는 권위와 섬김이 어떻게 한 몸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리더십의 교과서와 같다.

우두머리의 형상과 가난한 마음의 만남
'레쉬(ר)'의 상형문자적 유래는 '사람의 머리(Human Head)'다. 히브리어로 머리를 뜻하는 '로쉬(רֹאשׁ)'가 바로 이 글자에서 시작된다. 머리는 신체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통제 센터다.
그런데 흥미로운 언어적 장치가 존재한다. 히브리어로 '가난한 자' 혹은 '비천한 자'를 뜻하는 단어 역시 '라쉬(רָשׁ)'로, '레쉬'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는 리더십에 대한 거대한 역설을 내포한다. 참된 우두머리(로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가난한 마음(라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글자의 모양을 살펴보면 리더십의 형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레쉬는 오른쪽 어깨가 둥글게 굽어 있다. 이는 마치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과 같다. 가장 높은 곳을 상징하는 글자가 정작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구부러져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경에서 '레쉬'로 시작하는 또 다른 중요한 단어는 '라함(רַחַם, Raḥam - 자비/긍휼)'이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의 어원은 '자궁(רֶחֶם, Reḥem, 레헴)'이다. 리더의 머리(레쉬)가 가져야 할 궁극적인 태도는 생명을 잉태하고 품어주는 어머니의 자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점' 하나로 갈리는 교만과 겸손
히브리어 알파벳 중 레쉬(ר)와 가장 닮은 글자는 네 번째 글자인 '달렛(ד)'이다. 달렛은 뒤쪽에 직각을 이루는 돌기가 있는 반면, 레쉬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온다. 카발라 전통에서 달렛의 튀어나온 모서리는 타인의 소리와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의 귀'를 상징한다.
반면, 레쉬는 그 모서리가 매끈하게 깎여 나간 형상이다. 이는 리더가 타인의 조언을 듣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에만 매몰될 때, 교만이라는 위험한 비탈길로 미끄러지기 쉬움을 경고하는 시각적 장치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 때 레쉬의 부드러운 곡선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이 타인을 품는 유연함이 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권고를 흘려보내는 매끄러운 고집이 될 것인가. 리더는 매 순간 이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머리'를 점검해야 한다.

섬기지 않는 권위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권위(Authority)는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Influence)에서 나온다. 영향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머리로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가슴으로 지탱하느냐에 달려 있다. 머리(레쉬)가 몸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머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체에서 머리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목이다. 진정한 리더는 스스로 머리라고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기꺼이 타인을 떠받치는 목이 되는 자다.
'레쉬'의 숫자 값 200은 완전함(100의 배수)을 지향하지만 아직 그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리더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다. 자신의 가난함(라쉬)을 인정하고 타인의 도움을 수용할 때, 리더의 권위는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섬김이 배제된 권위는 타인을 착취하는 도구가 될 뿐이며,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당신의 머리는 어디를 향해 굽어 있는가?
히브리어 스무 번째 글자 레쉬(ר)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십의 실체를 묻는다. 당신의 왕관은 타인을 누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기 위한 것인가.
진정한 리더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도 가장 낮은 곳의 먼지를 살피는 사람이다. '로쉬(우두머리)'의 명예를 소유하되, 심령이 '라쉬(가난한 자)'가 되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다면, 자신의 '레쉬(ר)'를 확인해 보라. 뻣뻣하게 세워진 목은 부러지기 쉽지만, 부드럽게 굽은 레쉬의 어깨는 세상을 포용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당신의 권위가 섬김이라는 이름의 생명수가 되어 주변을 적시기를 소망한다.


















